A대학은 기하, B대학은 확통… 저는 뭘 들어야 해요?
고1 여름방학이 지나면 교무실로 이런 질문이 몰려와요. "선생님, A 대학은 기하를 권장하고, B 대학은 확률과 통계를 핵심 과목이라고 하고, C 대학은 아무 말이 없어요. 저는 뭘 들어야 해요?" 대학별 권장과목 안내를 몇 개 열어 본 아이일수록 오히려 더 헷갈려 해요.
헷갈리는 게 당연해요. 권장과목은 국가가 정한 하나의 목록이 아니라 대학마다 자기 학과에서 공부하려면 무엇을 배우고 오면 좋은지 각자 밝힌 안내예요. 그러니 다를 수밖에 없어요. 이 차이를 다 외우려 하기보다 몇 가지 기준을 먼저 잡아 두면 훨씬 덜 흔들려요.
권장은 자격이 아니라 신호예요
먼저 안심하실 부분부터요. 대부분의 대학에서 권장과목은 지원 자격이 아니에요. 서울대도 전공 연계 과목 선택 안내에서 권장 과목은 지원 자격과 무관하다고 분명히 밝혔어요. 그 과목을 안 들었다고 원서를 못 쓰는 건 아니라는 뜻이에요.
다만 무관하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서울대는 그 이수 여부를 수시 서류평가와 정시 교과역량평가에 반영한다고 했어요. 다른 대학들도 학생부종합전형에서 학생의 과목 선택을 학업 준비도로 읽어요. 그러니 권장과목은 "이걸 안 들으면 떨어진다"가 아니라 "이걸 들었다면 우리 학과 공부를 준비해 온 학생이라고 읽겠다"는 신호에 가까워요.
왜 대학마다 다를까요
같은 경제학과인데 어떤 대학은 미적분을, 어떤 대학은 확률과 통계를 강조해요. 학과가 실제로 어떤 수업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수리 모형을 많이 다루는 학과라면 미적분이, 데이터 분석을 많이 하는 학과라면 확률과 통계가 더 필요할 수 있어요.
어떤 대학은 자연계열에서 확률과 통계를 핵심 과목에 넣기도 하고, 서울대는 자연계열 상당수 학과에서 기하와 미적분Ⅱ를 권장해요. 둘 중 누가 맞고 틀린 게 아니라, 각 대학이 자기 교육과정을 보고 정한 결과예요. 이 차이를 알고 나면 "어느 쪽이 정답이지?"라는 질문 대신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무엇을 원하지?"라는 질문을 하게 돼요.
대학보다 계열부터 정해 보세요
고1 단계에서 지원 대학을 하나로 정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대학 이름보다 계열을 먼저 정하는 게 현실적이에요. 공학 쪽인지, 생명·의약 쪽인지, 경상 쪽인지, 인문·사회 쪽인지. 계열이 정해지면 여러 대학의 안내에서 공통으로 겹치는 과목이 보이기 시작해요.
예를 들어 공학계열이라면 대학마다 표현은 달라도 수학 심화 과목과 물리학 관련 과목이 반복해서 등장해요. 생명 쪽이라면 화학과 생명과학 관련 과목이 자주 나오고요. 여러 대학이 공통으로 말하는 과목을 우선 챙기고, 그다음에 지망 대학별로 조금씩 다른 부분을 맞춰 가면 돼요.
우리 학교에 그 과목이 없다면
현실적인 고민도 있어요. 대학이 권하는 과목이 우리 학교 교육과정에 아예 없거나, 수강 인원이 적어서 열리지 않는 경우예요. 이럴 때는 지역 공동교육과정이나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으로 들을 수 있는지 학교에 먼저 물어보세요.
대학들도 학교 여건 때문에 듣지 못한 과목이 있다는 사정을 점점 더 고려하려는 흐름이에요. 학교 여건 때문에 생긴 공백을 학생 혼자 짊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방향이에요. 학교에서 들을 수 없었던 이유와 대신 어떤 노력을 했는지가 학생부에 드러나면 대학도 그 맥락을 읽어요.
하나 더 말씀드리면, 권장과목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끝나지 않아요. 그 과목에서 어떤 성취를 보였고 수업에 어떻게 참여했는지가 함께 읽혀요. 어려운 과목을 듣고 성적이 아쉬웠다면 그 안에서 무엇을 붙잡고 씨름했는지가 세특에 남도록 하는 게 좋아요. 대학은 도전한 흔적과 그 결과를 같이 봐요.
그리고 권장과목 안내는 해마다 조금씩 손질될 수 있어요. 고1 때 본 안내가 고3 원서철까지 똑같다는 보장은 없으니, 과목 선택 직전과 원서 쓰기 전에 한 번씩 다시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 두세요.
오늘 열어 볼 안내서 두 개
오늘 할 일은 딱 두 개예요. 아이가 관심 있는 계열에서 가고 싶은 대학 두 곳을 골라, 각 대학 입학처에 올라온 권장과목 안내를 열어 보는 거예요. 두 안내에서 겹치는 과목에 동그라미를 쳐 보세요. 그 동그라미가 고2 과목 선택의 첫 번째 기준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