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말 뒤 '수시 버릴까요?' 묻는 고1에게
고1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면 이런 질문이 쏟아져요. "저 수시 버리고 정시로 갈까요?" 첫 학기 내신이 기대보다 낮게 나온 아이일수록 이 질문이 빨라요. 마음은 이해해요. 수시는 이미 망한 것 같고, 수능 한 번에 거는 게 깔끔해 보이거든요.
그런데 고1에게 수시와 정시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에요. 서로 기대어 있는 두 다리에 가까워요. 수시에는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붙어 있고, 정시 일부는 학생부를 들여다봐요. 한쪽 다리만으로 서려고 하면 생각보다 빨리 균형을 잃어요.
수시를 버리면 잃는 것
숫자부터 볼게요. 대교협이 해마다 정리하는 시행계획을 보면 전체 모집인원의 80% 남짓이 수시예요.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긴 해도 큰 흐름이 갑자기 뒤집힐 가능성은 낮아요. 수시를 버린다는 건 이 넓은 문을 스스로 닫는다는 뜻이에요.
게다가 고1 1학기 성적은 전체 학생부의 일부일 뿐이에요. 고3 1학기까지 다섯 학기가 쌓이고, 대학은 성적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도 함께 봐요. 첫 학기가 아쉬웠는데 그다음 학기부터 꾸준히 올라간 기록은 그 자체로 좋은 이야기가 돼요. 지금 수시를 버리면 그 이야기를 쓸 기회도 함께 버리는 거예요.
정시를 버려도 잃는 게 있어요
반대로 수시만 하겠다고 수능을 미뤄 두는 아이도 있어요. 이 경우 고3이 되어 수능 최저학력기준 앞에서 막혀요. 학생부로 1차를 통과해도 최저를 못 넘기면 최종 합격이 안 되는 전형이 많거든요. 내신 5등급제로 등급 변별이 약해지면서 대학들이 수능으로 한 번 더 거르려는 경향도 있어요.
또 수시 여섯 장이 모두 떨어지는 경우도 생각해야 해요. 그때 남는 길이 정시예요. 수능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그 길이 막혀요. 정시는 수시의 보험이기도 해요.
두 공부가 겹치는 구간이 넓어요
다행인 건 고1 공부는 수시와 정시가 거의 같은 내용을 다룬다는 거예요. 지금 듣는 공통국어, 공통수학, 통합사회, 통합과학이 그대로 수능 출제 범위의 큰 줄기예요. 학교 시험을 잘 준비하면 그게 수능의 기초 공사가 되고, 수능식 문제를 풀어 보면 내신 서술형에도 도움이 돼요.
그래서 고1 때 수시냐 정시냐를 고르는 건 사실상 의미가 크지 않아요. 같은 공부를 하면서 시험의 형식만 두 가지로 연습하는 시기거든요. 갈림길은 고2 말, 성적과 학생부가 어느 정도 쌓인 뒤에 와도 늦지 않아요.
둘을 함께 쥐는 고1의 일주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평일에는 학교 수업과 내신 준비에 집중해요. 수업 시간에 생긴 질문은 메모해 두고, 수행평가는 점수만 채우지 말고 자기 생각을 하나 넣어 보는 거예요. 이게 수시의 다리예요.
주말에는 한두 시간 정도 수능 형식의 문제를 시간을 재고 풀어 봐요. 학력평가 기출이나 평가원 예시 문항이면 충분해요. 틀린 문제는 교과서의 어느 단원에서 나왔는지 찾아보면, 다시 평일의 내신 공부와 이어져요. 이게 정시의 다리예요. 두 다리가 같은 길 위에서 번갈아 움직이는 셈이에요.
한 가지 덧붙이면, 고1 때 수시와 정시를 함께 붙잡는 게 시간이 두 배로 든다는 뜻은 아니에요. 오히려 하나만 하겠다고 정한 아이들이 다른 쪽을 아예 모르고 지내다가 고3이 되어 몰아서 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써요. 지금 조금씩 함께 해 두는 게 길게 보면 가장 시간이 덜 드는 방법이에요.
학교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도 "수시예요, 정시예요?"보다 "지금 무엇이 더 약해요?"를 물어보세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다음 학기에 어디에 힘을 실을지를 알려 줘요.
고1 1년은 생각보다 짧아요. 한 학기 동안 두 다리를 번갈아 움직여 보면,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럽게 걸어지는지 아이 스스로 느끼게 돼요. 갈림길에서의 선택은 그 감각이 생긴 뒤에 해도 충분해요.
첫 성적표가 아쉬웠다면
첫 학기 성적이 아쉬웠던 아이에게 "그럼 정시 해"라는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길 하나를 접으라는 말이에요. 대신 이렇게 말해 주세요. "다음 학기에 하나만 올려 보자." 과목 하나, 등급 한 칸이면 충분해요. 그 작은 상승이 수시의 다리를 다시 세우고, 그 과정에서 쌓인 실력이 정시의 다리도 함께 튼튼하게 만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