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 되풀이와 엉뚱한 문장, 천 자 답안의 두 감점
첨삭한 답안지를 돌려주면 학생들이 가장 자주 받는 빨간 글씨가 두 가지예요. "앞에서 한 말이에요." 그리고 "질문과 상관없어요." 천 자 안팎의 답안에서 이 두 가지가 한두 문장씩만 끼어도 실제로 쓸모 있는 내용은 금방 칠팔백 자로 줄어들어요. 분량은 채웠는데 점수가 안 나오는 답안의 대부분이 이 경우예요.
반복과 이탈은 실력이 부족해서보다 쓰기 전에 설계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머릿속에 대략적인 생각만 가지고 바로 쓰기 시작하면, 쓰는 도중에 할 말이 떨어지고, 빈칸을 채우려고 앞의 말을 다시 하거나 엉뚱한 이야기로 새요.
반복은 할 말이 모자랄 때 생겨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학생의 답안을 보면, 처음 두 문단은 충실한데 세 번째 문단부터 앞의 내용을 다른 말로 다시 쓰고 있어요. 쓸 내용이 두 문단 치밖에 준비되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반복을 막는 방법은 문장을 다듬는 게 아니라, 쓰기 전에 할 말을 충분히 꺼내 두는 거예요.
제시문을 읽은 뒤 바로 쓰지 말고, 시험지 여백에 답안에 들어갈 내용을 짧은 단어로 적어 보세요. 질문이 요구하는 것 하나에 근거 두세 개, 제시문에서 끌어올 문장 위치 정도면 돼요. 이 메모가 세 덩어리 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아직 쓰기 시작할 때가 아니에요. 제시문을 한 번 더 읽어야 해요.
시간이 아까워 보여도 이 설계에 오 분 정도를 쓰는 학생이 결국 더 빨리 끝내요. 설계 없이 쓰기 시작한 학생은 중간에 멈춰 생각하고, 앞 문단을 지우고, 다시 쓰느라 시간을 더 많이 써요. 답안지에 지운 흔적이 많으면 읽는 사람도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워지고요. 연습할 때 메모 시간을 따로 재 보면, 처음에는 십 분 넘게 걸리던 게 몇 주 지나면 절반으로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이탈은 질문을 잊을 때 생겨요
질문에서 벗어나는 문장은 대개 답안 중간쯤부터 나와요. 쓰다 보니 제시문의 흥미로운 부분에 끌려가거나, 내가 아는 배경지식을 자랑하고 싶어지는 순간이에요. 채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문장이 아무리 멋있어도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점수를 줄 수 없어요.
이걸 막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질문의 동사에 밑줄을 긋는 거예요. 비교하라, 평가하라, 설명하라. 그리고 답안의 각 문단을 쓰기 전에 "이 문단은 그 동사에 어떻게 답하지?" 하고 스스로 물어요. 대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문단은 쓰지 않는 게 나아요.
천 자를 나누는 감각
천 자 안팎이라면 보통 서너 문단이 돼요. 문단 하나에 이삼백 자 정도씩이에요. 첫 문단에서 질문에 대한 내 답을 분명히 밝히고, 가운데 문단에서 근거를 하나씩 풀고, 마지막 문단에서 앞의 내용을 한 단계 묶어 주는 흐름이 무난해요. 대학마다 요구하는 분량과 형식이 다르니, 지원 대학의 기출 조건에 맞춰 비율을 조정하면 돼요.
마지막 문단이 특히 반복의 위험이 커요. 많은 학생이 마지막 문단을 앞의 요약으로 채우는데, 천 자짜리 답안에서 요약은 대부분 감점 요인이에요. 대신 앞에서 말한 근거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혹은 질문이 요구한 평가를 한 문장으로 분명히 하는 데 쓰세요.
다 쓰고 나서 하는 이 분 점검
답안을 다 쓰고 시간이 조금 남았다면, 각 문단의 첫 문장만 이어서 읽어 보세요. 첫 문장들만 읽어도 답안의 흐름이 보여야 해요. 두 문단의 첫 문장이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면 반복이 있다는 신호예요. 어느 문단의 첫 문장이 질문과 연결이 안 된다면 이탈이 있다는 신호고요.
시험장에서 크게 고치기는 어렵지만, 한두 문장을 지우거나 접속어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답안의 인상이 꽤 달라져요. 평소 연습할 때 이 점검을 습관으로 들여 두면, 실전에서는 쓰는 도중에 저절로 걸러지기 시작해요. 글자 수를 세는 습관도 들여 두면 좋아요. 연습 답안지 한 줄에 몇 자쯤 들어가는지 알면, 시험장에서 분량을 따로 세지 않아도 감으로 맞출 수 있어요.
고쳐 쓰기로 감각을 만들어요
첨삭을 받은 답안은 반드시 한 번 다시 써 보세요. 빨간 글씨가 붙은 문장을 지우고, 그 자리에 질문에 답하는 문장을 새로 넣는 거예요. 같은 문제를 다시 쓰면 처음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더 단단한 답안이 나와요. 그 차이를 몸으로 느끼는 순간부터 반복과 이탈이 눈에 띄게 줄어요.
오늘 써 둔 답안이 있다면 꺼내서 문단 첫 문장에만 형광펜을 칠해 보세요. 그 몇 줄이 내 답안의 진짜 뼈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