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갈 거라 수능은 대충'이 위험한 까닭
"저는 수시로 갈 거라 수능은 대충 볼래요." 고2 겨울쯤 이런 말을 하는 학생이 꽤 있어요. 내신이 괜찮고 학생부 활동도 쌓여 있으니 그럴 만하죠. 그런데 이 말을 고3 11월에 후회하는 학생도 해마다 있어요. 수시 원서 가운데 상당수가 수능 성적을 조건으로 걸어 두고 있기 때문이에요.
수시에서 수능이 쓰이는 대표적인 자리가 수능 최저학력기준이에요. 학생부교과전형이든 논술전형이든 일부 종합전형이든, 최저를 맞추지 못하면 다른 평가가 아무리 좋아도 불합격이에요. 수시로 가겠다는 학생에게도 수능은 출발선이 아니라 결승선 바로 앞의 문 같은 거예요.
최저 하나에 원서 여러 장이 걸려요
수시 원서는 최대 여섯 장이에요. 그런데 이 가운데 최저가 걸린 원서가 네다섯 장이라면, 수능 하루가 그 원서 모두의 결과를 함께 좌우하게 돼요. 내신이 1점대 초반이어도 최저를 맞추지 못하면 교과전형 합격은 어려워요. 실제로 교과전형에서 내신은 충분한데 최저 때문에 떨어지는 학생들을 매년 보게 돼요.
그래서 수시 준비생의 수능 목표는 "잘 보기"보다 "최저를 안정적으로 넘기기"로 잡는 게 현실적이에요. 지원하려는 대학의 최저가 어느 영역 몇 등급인지 알고, 그 영역에 공부를 집중하는 거예요. 모든 과목을 고르게 끌어올리기보다 최저에 들어가는 과목을 확실히 지키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에요.
여기서 많은 학생이 놓치는 게 하나 있어요. 학교 내신 시험과 수능은 같은 과목이라도 전혀 다른 시험이라는 점이에요. 내신 수학 1등급인 학생이 모의고사 수학에서 3등급을 받는 일은 드물지 않아요. 내신은 정해진 범위를 깊이 파는 시험이고, 수능은 넓은 범위를 정해진 시간 안에 처리하는 시험이니까요. 그래서 "내신을 잘하니 수능 최저는 저절로 되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해요. 모의고사 성적표를 따로 놓고 보는 습관이 필요해요.
정시는 수시의 안전망이에요
수시 결과는 12월에 나와요. 여섯 장이 모두 불합격일 수도 있어요. 그때 정시 원서를 쓸 수 있는 수능 성적이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예요. 수능을 대충 본 학생은 이 순간 선택지가 거의 남지 않아요. 수능 공부를 놓지 않은 학생은 수시가 기대만큼 안 되어도 정시로 다시 도전할 수 있어요.
반대 방향의 가능성도 있어요. 수능을 예상보다 잘 봐서 정시로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되는 경우예요. 이럴 때를 대비해 수시 원서를 정시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낮은 곳은 쓰지 않는 게 원칙인데, 이것도 수능 실력이 받쳐 줘야 가능한 계산이에요. 수능을 놓은 학생은 이 계산 자체를 할 수 없어서, 수시 원서를 지나치게 안전하게 쓰거나 반대로 근거 없이 높게 쓰게 돼요.
대학별 고사도 결국 수능 공부 위에 있어요
논술이나 면접처럼 대학이 직접 보는 시험도 수능 공부와 떨어져 있지 않아요. 수리 논술은 수학 교과 범위에서 나오고, 인문 논술 제시문을 읽는 힘은 수능 국어 비문학을 읽는 힘과 거의 같아요. 학생부종합전형의 면접에서 교과 개념을 묻는 경우에도 수능 공부로 다진 기초가 그대로 쓰여요.
내신과 수능을 함께 굴리는 방법
고2, 고3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시간이에요. 내신 시험 기간에는 내신에 집중하고, 시험이 끝나면 수능 공부로 돌아오는 흐름을 만들면 둘 다 놓치지 않을 수 있어요. 내신 범위를 공부할 때도 그 단원의 수능 기출 몇 문제를 함께 풀어 보면 두 공부가 서로를 밀어 줘요.
특히 영어와 국어는 내신과 수능의 거리가 큰 과목이에요. 내신은 교과서와 부교재 범위가 정해져 있지만, 수능은 처음 보는 지문을 읽어야 하니까요. 매일 비문학 지문 두세 개, 영어 지문 몇 개를 꾸준히 읽는 습관이 내신 기간에도 끊기지 않게 하는 게 좋아요.
지금 고2라면 정해 둘 것
고2 겨울방학에는 관심 대학의 수시 전형별 최저를 한 번 모아 보세요. 그리고 지금 모의고사 성적과 비교해서 어느 영역이 가장 불안한지 찾아 두세요. 그 영역이 고3 1년 동안 수능 공부의 중심이 돼요. 수능에서 국어와 수학은 선택과목 없이 공통 과목으로, 탐구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으로 치러진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두세요.
오늘 할 일은 간단해요. 가고 싶은 대학 한 곳의 교과전형 최저를 찾아 책상 앞에 붙여 두세요. 수시러에게 수능은 남의 시험이 아니라는 걸 매일 보는 종이 한 장이 알려 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