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학점제를 해 본 학교들이 겪은 다섯 가지 어려움
고교학점제는 전면 시행과 함께 갑자기 시작된 제도가 아니에요. 그전 몇 년 동안 연구학교와 선도학교라는 이름으로 먼저 해 본 학교들이 있었어요. 그 학교 선생님들이 교무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문제들은 지금 전국 고등학교로 그대로 옮겨 왔어요. 그러니 그 시행착오를 알면, 우리 아이가 앞으로 학교에서 어떤 장면을 만날지 꽤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어요.
다섯 가지로 묶어 보면 이래요. 수요조사와 실제 개설이 어긋나는 일, 수강생이 적은 과목의 등급 고민, 갑자기 생긴 빈 시간, 진로가 정해지지 않은 아이의 막막함, 그리고 선생님 한 분이 감당하는 과목 수의 문제예요. 하나씩 우리 집 이야기로 옮겨 볼게요.
원하는 과목을 적었는데 안 열렸어요
학점제를 먼저 해 본 학교에서 가장 자주 나온 이야기예요. 학생들에게 듣고 싶은 과목을 물었더니 정말 다양하게 나왔는데, 막상 학교가 그 과목을 모두 열 수는 없었던 거죠. 신청자가 너무 적거나, 가르칠 선생님이 없거나, 교실이 모자랐어요.
그래서 많은 학교가 수요조사를 여러 번 하는 방식으로 바꿨어요. 처음엔 넓게 묻고, 개설 가능한 과목을 추린 뒤 다시 묻는 거예요. 학부모 입장에서는 첫 번째 조사에서 적은 과목이 그대로 열린다고 믿지 않는 게 좋아요. 그리고 안 열린 과목은 공동교육과정이나 온라인학교로 들을 수 있는지 함께 알아보면 길이 생기기도 해요.
열 명짜리 과목의 1등급은 한 명이에요
수강생이 적은 과목에서 등급을 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먼저 해 본 학교들이 몸으로 겪었어요. 진로에 꼭 맞는 과목인데 듣는 학생이 적으니, 1등급 자리가 한두 개뿐인 거예요. 그래서 학생들이 진로보다 인원이 많은 과목으로 몰리는 일이 생겼어요.
지금 5등급제에서는 1등급 비율이 10%라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소수 과목의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이 고민은 정답이 없어요. 다만 대학이 학생부를 볼 때 과목의 수강자 수와 원점수, 성취도를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은 알고 계시면 좋아요. 등급 하나만으로 과목을 피하는 게 늘 유리한 선택은 아니에요.
반 친구가 흩어지면 시간이 비어요
학생마다 다른 과목을 들으면 시간표에 구멍이 생겨요. 어떤 학생은 수업이 있고, 어떤 학생은 그 시간이 비어 있는 거죠. 먼저 해 본 학교들은 이 빈 시간을 어떻게 관리할지에서 꽤 애를 먹었어요. 자습실을 따로 두기도 하고, 도서관을 열어 두기도 했어요.
아이에게 공강이 생기면 그 시간을 어디서 무엇을 하며 보내는지 한 번 물어봐 주세요. 학교 규칙상 정해진 장소가 있을 거예요. 이 시간을 잘 쓰는 아이와 흘려보내는 아이의 차이는 한 학기만 지나도 드러나요.
진로가 없으면 고르는 게 고역이에요
학점제는 진로에 맞춰 과목을 고르라고 말해요. 그런데 고1 여름에 진로가 정해진 아이가 얼마나 될까요. 먼저 해 본 학교 선생님들도 진로가 흐릿한 학생들이 가장 막막해한다는 걸 금방 알았어요. 친구 따라 고르거나, 쉬워 보이는 과목을 고르거나, 아예 결정을 못 하고 마감일을 넘기는 일도 있었고요.
그래서 많은 학교가 고1 때 과목 안내와 진로 상담을 촘촘하게 하기 시작했어요. 부모님이 해 주실 일은 아이에게 진로를 빨리 정하라고 재촉하는 게 아니에요. 아직 넓게 열어 두고 싶다면, 여러 계열로 이어질 수 있는 기초 과목을 고르는 것도 충분히 좋은 선택이라고 말해 주세요.
선생님 한 분이 여러 과목을 맡아요
학생이 고를 과목이 늘어나면 선생님이 가르칠 과목도 늘어나요. 먼저 해 본 학교에서는 한 선생님이 한 학기에 서너 과목을 준비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어요. 수업 준비와 평가가 그만큼 늘어나죠. 이건 학부모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알고 계시면 학교를 이해하는 눈이 달라져요.
가끔 "이 과목은 선생님이 잘 모르시는 것 같다"는 아이의 불평을 듣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럴 때 선생님을 탓하기보다 그 과목을 스스로 더 파고들 기회로 삼게 해 주시면 좋아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남는 건 결국 아이가 수업 안에서 보여 준 모습이니까요.
먼저 겪은 학교가 남긴 교훈
결국 학점제는 학교 혼자서도, 학생 혼자서도 굴러가지 않는 제도예요. 학교의 안내, 학생의 선택, 가정의 대화가 맞물려야 해요. 이번 학기 학교에서 오는 과목 선택 안내문을 받으면 그냥 서명만 하지 마시고, 아이와 함께 한 번 끝까지 읽어 보세요. 그 십 분이 다음 학년 시간표를 바꿔 놓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