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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교육

AI가 글을 쓰는 시대, 인문 계열은 어디로 갈까요

EDU HIGH 운영자 · 2026.06.19

고2 문과 교실에 가면 요즘 이런 대화가 자주 들려요. "AI가 번역도 하고 글도 쓰는데, 우리 과는 뭐 하냐." 반쯤 농담이지만 반쯤은 진심이에요. 진로 상담에서도 인문 계열 학생들의 불안이 눈에 띄게 커졌어요. 인문학이 원래도 취업이 어렵다는 말을 듣는데, AI까지 나타났으니 설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거죠.

그 불안에 먼저 정직하게 답하고 싶어요. AI가 인문 계열 일자리의 일부를 바꿔 놓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간단한 번역, 정해진 형식의 글쓰기, 자료 요약 같은 일은 이미 기계가 꽤 잘해요. 그런데 동시에 커지고 있는 일도 있어요.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커지는지 나눠 보면, 인문 계열 학과를 고르는 기준이 훨씬 분명해져요.

회색과 검은색 타자기

기계가 대신하기 쉬운 일, 어려운 일

AI가 잘하는 일은 패턴이 분명하고 정답에 가까운 결과가 있는 일이에요. 문장을 다른 언어로 옮기기, 긴 글을 요약하기, 형식에 맞춰 보고서를 쓰기 같은 것들이요. 이런 일만 하던 자리는 줄어들 가능성이 커요.

반대로 AI가 어려워하는 일도 있어요. 맥락을 깊이 읽어야 하는 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일이에요. 번역기가 문장은 옮겨도, 그 문장이 그 사회에서 어떤 무게를 갖는지는 놓치기 쉬워요. AI가 글은 써도, 그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지 위로가 될지 판단하는 건 여전히 사람이에요. 인문학이 오랫동안 길러 온 능력이 바로 이쪽이에요.

지도 위의 세 갈래 길

인문 계열 학과들이 AI 시대에 갈 수 있는 길을 세 갈래로 그려 볼게요. 첫째는 기술과 만나는 길이에요. 언어학 전공자가 AI의 언어 처리를 설계하고, 철학 전공자가 AI 윤리를 다루고, 심리학이나 인지과학 쪽 공부를 더한 사람이 사람과 기계가 만나는 방식을 연구해요. 디지털 인문학처럼 옛 문헌을 데이터로 분석하는 분야도 커지고 있어요.

둘째는 사람과 만나는 길이에요. 교육, 상담, 문화 기획, 콘텐츠 기획처럼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에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은 영상, 게임, 광고 어디서나 필요해요. 셋째는 지역과 문화를 깊이 아는 길이에요. 어문 계열 학과가 언어 능력에 그 나라의 사회,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를 더하면, 번역기가 할 수 없는 '사이를 잇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점들이 선으로 연결된 복잡한 네트워크 도식

학과 이름보다 '무엇을 더할지'를 보세요

이 지도에서 중요한 건 어느 학과에 가느냐보다, 그 학과 공부에 무엇을 더하느냐예요. 국문학과 학생이 데이터 분석을 더하면 텍스트 데이터를 다룰 수 있고, 사학과 학생이 디지털 기술을 더하면 기록을 새롭게 보존하고 보여 주는 일을 할 수 있어요. 영문학과 학생이 경영을 더하면 해외 시장을 읽는 사람이 되고요.

그래서 학과를 고를 때 교육과정과 함께 그 대학이 복수전공이나 융합전공을 얼마나 열어 두는지 살펴보세요. 인문학과 다른 분야를 엮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다른 단과대학 과목을 듣기 쉬운지요. 이런 정보는 각 대학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부모님과 이야기할 때도 이 관점이 도움이 돼요. "인문학은 취업이 안 된다"는 걱정 앞에서 학과 하나를 변호하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이 전공에 무엇을 더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말하는 쪽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요.

고2가 지금 할 수 있는 준비

곧 고3 선택과목을 정해야 하는 고2라면, 인문 계열이라도 수학과 정보를 너무 일찍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확률과 통계 정도의 감각, 간단한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은 어떤 인문 계열 진로에서도 쓸모가 커요. 물론 관심 학과와 직접 이어지는 국어, 사회, 외국어 과목을 깊게 하는 게 먼저예요. 관심 대학의 권장 과목도 확인해 보세요.

학생부에서는 AI를 피하지 말고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보세요. AI 번역기가 우리 고전 문학의 한 구절을 어떻게 옮기는지 분석해 보거나, AI가 쓴 글과 사람이 쓴 글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식이에요. 인문학의 눈으로 AI를 들여다보는 탐구는 그 자체로 이 시대 인문학도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 줘요.

불안을 질문으로 바꾸기

"AI 때문에 우리 과는 끝났다"는 말은 불안이지만, "AI가 못 하는 걸 내 전공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는 질문이에요. 질문은 길을 만들어요. 오늘 AI 챗봇에게 내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이나 소설 한 장면을 해석해 달라고 해 보세요. 그리고 그 해석에서 빠진 것, 내가 보기에 틀린 것을 하나 찾아 적어 보세요. 그 빈칸이 바로 인문학이 설 자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