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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교육

엄마 아빠는 이 학과, 나는 저 학과일 때 나누는 대화

EDU HIGH 운영자 · 2026.05.18

"엄마는 내 얘기를 안 들어요." "애가 현실을 몰라요." 같은 날 상담실에서 아이와 부모님에게 각각 들은 말이에요. 두 분 다 진심이었고, 두 분 다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아이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고, 부모님은 공대에 가길 바라셨죠. 그리고 이 대화는 몇 달째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어요.

부모님과 아이가 원하는 학과가 다를 때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건 질문이에요. "어느 학과로 갈래?"라는 질문은 누군가 이기고 누군가 지는 구조를 만들어요. 대신 "이 학과의 무엇이 걱정이야?"와 "그 학과의 무엇이 좋아?"를 서로 꺼내 놓으면, 대화는 싸움이 아니라 탐색이 돼요.

현대식 주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여성

부모님의 반대 뒤에는 대개 걱정이 있어요

부모님이 특정 학과를 반대하실 때, 그 학과 자체가 싫으신 경우는 드물어요. 대부분은 "졸업하고 먹고살 수 있을까",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면 어쩌지", "주변에서 그 길로 가서 고생한 사람을 봤어" 같은 걱정이 깔려 있죠. 이 걱정을 말로 꺼내지 않고 "그건 안 돼"로만 표현하시면, 아이는 자기가 무시당한다고 느끼게 돼요.

그래서 부모님께 먼저 부탁드려요. 반대하는 이유를 구체적인 걱정으로 바꿔서 말씀해 주세요. "그 학과는 안 돼"보다 "그 분야는 졸업 후 일자리가 걱정돼"가 훨씬 대화하기 쉬운 문장이에요.

아이의 고집 뒤에도 이유가 있어요

아이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하고 싶어"라는 말 뒤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어요. 그 일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경험, 그 분야에서 칭찬받았던 기억,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 같은 것들이요. 아이가 이걸 스스로 말로 정리하지 못하면 부모님 눈에는 그저 고집으로 보여요.

아이에게는 이렇게 권해요. "왜 그 학과를 원하는지 세 가지만 적어 봐. 그리고 그 학과에 가서 4년 동안 뭘 배우는지도 찾아봐." 자기 이유를 글로 정리해 본 아이는 부모님 앞에서 훨씬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정보를 함께 찾으면 대화의 온도가 내려가요

대화가 감정적으로 흐를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자료를 보는 거예요. 아이가 원하는 학과와 부모님이 원하는 학과의 교육과정 표, 졸업생 진로 정보, 공식 사이트의 공시 자료를 나란히 펴 놓고 같이 읽어 보세요. 부모님의 걱정이 사실인지, 아이의 기대가 현실적인지를 서로 확인하는 시간이 되죠.

이 과정에서 의외의 발견을 하는 집이 많아요. 부모님이 걱정하던 진로가 생각보다 넓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아이가 꿈꾸던 학과의 실제 수업이 생각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해요.

자료를 볼 때는 역할을 나눠 보는 것도 좋아요. 아이는 부모님이 원하시는 학과를, 부모님은 아이가 원하는 학과를 맡아 조사해 오는 거예요. 상대가 원하는 쪽을 직접 찾아보다 보면, 그 학과를 원하는 이유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거든요. 각자 찾아온 것을 십 분씩 발표해 보면 저녁 식탁이 작은 진로 회의 자리가 돼요. 이때는 서로 말을 끊지 않기로 약속해 두면 더 좋아요.

요리하며 대화하는 두 여성

둘 사이에 다리를 놓는 선택지도 있어요

대화를 하다 보면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 말고 다른 길이 보이기도 해요. 디자인을 원하는 아이와 공대를 원하는 부모님이라면 산업디자인, 인간공학, 사용자 경험 설계처럼 두 영역이 만나는 분야를 함께 찾아볼 수 있죠. 또는 하나를 전공으로, 다른 하나를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으로 삼는 방법도 있어요.

완벽한 타협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서로의 이유를 들은 뒤에 내린 결정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정한 결정보다 훨씬 오래 버텨요.

결정은 결국 아이가 감당해야 해요

조금 어려운 말씀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결국 그 학과에서 4년을 보내는 건 아이예요. 부모님이 원하신 학과에 억지로 간 아이가 대학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저는 적지 않게 봤어요. 그때 아이도, 부모님도 많이 힘들어하셨죠. 부모님의 경험과 걱정은 정말 귀한 조언이지만, 마지막 선택의 무게는 아이가 지도록 해 주시는 게 장기적으로 아이를 지키는 길이에요.

오늘 저녁에는 결론을 내려 하지 말고, 서로에게 딱 한 가지씩만 물어보세요. "그 학과의 어떤 점이 걱정돼?" "그 학과의 어떤 점이 좋아?" 이 두 질문이면 대화의 첫 단추로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