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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교육

서술형 빈 줄 앞에서 멈추는 아이, 지금 해 줄 수 있는 일

EDU HIGH 운영자 · 2026.09.13

"선생님, 이거 몇 줄 써야 만점이에요?" 중학교 서술형 수행평가 시간에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이에요. 답을 아는 것과 그 답을 문장으로 풀어 쓰는 건 전혀 다른 일이라서, 객관식에서는 늘 잘하던 아이도 빈 줄 앞에서는 연필을 굴리며 한참을 멈춰 있곤 해요.

국가교육위원회가 서·논술형 평가를 넓히는 문제를 공론화 의제로 올리면서 이 장면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됐어요. 다만 지금 단계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에요. 언제부터, 어떤 시험에, 얼마만큼 들어간다는 내용이 확정된 게 아니라는 점부터 분명히 해 두는 게 좋아요.

종이에 글씨를 쓰는 사람의 손

공론화는 결정이 아니라 묻는 과정이에요

공론화라는 말이 낯설 수 있어요. 쉽게 말하면 정책을 정하기 전에 학생, 학부모, 교사, 시민의 생각을 듣고 토론을 거치는 절차예요. 이 과정이 끝나야 권고안이 나오고, 그다음에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이 실제 제도로 옮길지 따지게 돼요. 그러니 뉴스 제목만 보고 "내년부터 시험이 다 논술로 바뀐대" 하고 걱정할 단계는 아니에요.

그렇다고 흘려들을 일도 아니에요. 학교 시험에서 서술형 비중을 조금씩 늘려 온 흐름은 이미 오래됐거든요. 공론화는 그 방향을 더 크게 밀어붙일지, 대입 시험까지 넓힐지를 묻는 자리에 가까워요.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학교 안에서 쓰는 힘의 비중이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에요.

공론화 소식이 나오면 학부모 단체 대화방이 먼저 시끄러워져요. 누군가 기사 하나를 올리면 "그럼 이제 논술 학원 보내야 하나요?"라는 답글이 줄줄이 달리죠. 그럴 때 한 번만 숨을 고르고, 그 기사가 의견 수렴 일정을 말하는지 확정된 시행 계획을 말하는지 확인해 보세요. 대부분은 앞쪽이에요.

중학생 시험에서 먼저 바뀌는 건 채점 방식이에요

서·논술형이 늘어나면 문제 모양보다 채점 방식이 더 크게 달라져요. 객관식은 맞았는지 틀렸는지만 보지만, 서술형은 채점 기준표를 놓고 부분 점수를 줘요. 핵심 개념이 들어갔는지, 근거를 댔는지, 문장이 질문에 맞게 끝났는지 같은 항목이 하나하나 점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는 내용인데 점수가 깎이는 아이들이 생겨요. 질문은 "까닭을 쓰시오"인데 결과만 길게 쓰거나, 조건으로 준 단어를 빼먹는 식이죠. 시험이 바뀌면 이런 손실이 훨씬 커져요.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끝까지 읽지 않아서 생기는 감점이라는 게 안타까운 부분이에요.

수학도 예외가 아니에요. 답만 맞히던 습관이 있는 아이는 풀이 과정을 쓰라는 문제에서 중간 단계를 훌쩍 건너뛰어요. 머릿속에서는 당연한 단계였겠지만, 채점하는 사람 눈에는 빠진 단계예요. 서술형이 늘면 이런 생략이 고스란히 점수로 드러나요.

공정성 걱정, 학부모만 하는 게 아니에요

서·논술형 확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따라붙는 걱정이 채점의 공정성이에요. 선생님마다 점수가 다르지 않을지, 이의 제기가 쏟아지지 않을지 하는 것들이죠. 이 걱정은 학교 현장에서도 똑같이 해요. 채점 기준을 미리 세밀하게 만들고, 여러 교사가 함께 채점해 보며 맞춰 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도 그래서예요.

공론화가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게 채점할지, 교사가 채점할 시간은 어떻게 확보할지 같은 문제가 함께 논의되어야 제도가 굴러가요.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 논의가 어디까지 왔는지 정도만 챙겨 봐도 충분해요.

연필로 종이에 답을 적어 내려가는 모습

지금 중학생이 길러 두면 손해 없는 힘

제도가 어떻게 정해지든 쓸모가 있는 연습이 있어요. 첫째는 질문을 다시 쓰는 습관이에요. 답을 쓰기 전에 "이 문제는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지?"를 한 줄로 바꿔 적어 보는 거예요. 둘째는 주장 한 문장, 이유 한 문장, 예시 한 문장으로 짧게 답해 보는 연습이에요. 길게 쓰는 것보다 세 문장을 정확하게 쓰는 쪽이 채점 기준표에 훨씬 잘 맞아요.

학교에서 돌려받은 서술형 답안지도 그냥 넣어 두지 마세요. 어디서 점수가 빠졌는지 선생님께 여쭤보면 채점 기준을 직접 들을 수 있어요. 학원 교재보다 이게 더 정확한 정보예요.

독서도 빼놓을 수 없어요. 서술형은 결국 읽은 걸 자기 말로 다시 꺼내는 일이라서, 평소에 긴 글을 끝까지 읽어 본 아이가 문제 속 조건도 덜 놓쳐요.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과 그 이유를 두 문장으로 말해 보는 정도면 충분한 연습이 돼요.

소식은 천천히, 연습은 오늘부터

정책 소식은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바뀌어요. 그 흐름을 매주 따라가며 마음 졸일 필요는 없어요. 오늘 저녁에는 아이가 최근에 본 서술형 문제 하나를 함께 펴 놓고, 질문이 무엇을 요구했는지 한 줄로 바꿔 말해 보게 해 주세요. 그 한 줄이 쌓이면 시험이 어떤 모양으로 바뀌어도 아이는 덜 흔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