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이 지나간 자리에 학원가가 내건 새 간판들
몇 해 전 수능에서 이른바 킬러문항을 빼겠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학원가 홍보 문구가 한꺼번에 바뀌었던 걸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거예요. 초고난도 문제 대비를 내세우던 광고가 줄고, 그 자리에 "변별력 있는 준킬러 대비", "실수 줄이기 특강" 같은 문구가 들어섰죠. 단속은 학원을 없애지 못했어요. 대신 학원이 파는 상품의 이름을 바꿨어요.
교육 당국은 수능 출제 과정과 사교육 업체의 유착, 과장 광고 같은 문제를 들여다보겠다며 신고센터를 열고 점검에 나섰어요. 그 뒤로 몇 가지는 분명히 달라졌고, 몇 가지는 모양만 바뀐 채 그대로 남았어요. 학원을 고르는 학부모 입장에서 이 차이를 알아 두면 광고를 읽는 눈이 달라져요.
문제를 사고파는 일에 대한 경계
가장 크게 문제가 된 건 수능이나 모의평가 출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학원이나 강사에게 문항을 만들어 파는 구조였어요. 시험을 만드는 쪽과 시험을 대비시키는 쪽이 너무 가까워지면, 그 정보를 살 수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사이의 출발선이 달라지거든요.
이 부분은 단속 이후 경계가 높아졌어요. 출제 참여자 관리가 강화됐고, 학원이 출제 경력을 홍보에 내세우는 일도 조심스러워졌어요. 학부모 입장에서는 "출제위원 출신이 만든 문제"라는 광고를 보면 오히려 한 번 더 따져 보는 게 맞아요.
광고 문구는 바뀌었지만
과장 광고도 점검 대상이었어요. 합격 보장, 몇 등급 상승 보장 같은 문구가 줄었고, 근거 없는 실적 자랑도 예전보다 조심스러워졌어요. 그런데 불안을 건드리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는 메시지는 여전히 학원 설명회의 단골이에요.
학부모가 학원 광고를 볼 때는 문구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세요. 수업에서 무엇을 다루는지, 한 반에 몇 명인지, 숙제와 피드백은 어떻게 하는지, 그만둘 때 환불은 어떻게 되는지요. 이런 질문에 분명하게 답하는 학원이 광고 문구가 화려한 학원보다 믿을 만해요.
수능이 바뀌자 학원도 옮겨 갔어요
초고난도 문항이 빠지면 학원의 필요가 줄어들 거라는 기대도 있었어요. 실제로는 수요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는 평가가 많아요. 아주 어려운 문제 대신 중상위 난도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훈련, 실수를 줄이는 반복 연습 쪽으로 강의가 바뀌었어요. 변별의 지점이 옮겨 가자 학원도 따라 움직인 거죠.
이건 사교육이 유연하다는 뜻이기도 해요. 시험 제도가 바뀌면 학원은 가장 먼저 반응해요. 그래서 제도 변화만으로 사교육이 크게 줄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요. 결국 학교 수업과 공교육 안의 지원이 얼마나 탄탄한지가 함께 가야 해요.
EBS 강의와 학교 방과후 프로그램을 늘리는 정책이 함께 나온 것도 그래서예요. 학원 말고도 기댈 곳이 있어야 학부모가 불안에 덜 휘둘리니까요. 우리 아이 학교에 어떤 보충 수업이나 방과후 강좌가 열려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세요. 생각보다 쓸 만한 선택지가 이미 가까이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학부모가 확인할 수 있는 권리
학원비는 교육청에 등록된 교습비 범위 안에서 받아야 하고, 학원은 교습비를 게시하도록 되어 있어요. 등록된 금액보다 많이 받거나, 환불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관할 교육지원청에 문의할 수 있어요. 많은 부모님이 이 사실을 모른 채 불편을 참고 넘어가요.
교재비나 모의고사비 명목으로 따로 받는 돈이 지나치게 많다면 그것도 확인해 볼 만해요. 영수증과 안내문을 모아 두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이 돼요.
또 하나, 학원과 상담할 때 오간 약속은 문자나 메일처럼 기록이 남는 방식으로 받아 두세요. 수업 횟수나 보강 약속, 반 편성 조건 같은 것들이요. 말로만 오간 약속은 담당자가 바뀌면 사라지기 쉬워요. 이건 학원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서로 오해를 줄이기 위한 장치예요.
단속보다 오래 가는 기준
정책은 정권에 따라 강해지기도 약해지기도 해요. 하지만 학부모가 스스로 세운 기준은 오래 가요. 다음에 학원 설명회에 가게 되면, 그 학원이 우리 아이의 어떤 부족한 점을 어떻게 채워 주는지 한 문장으로 들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그 한 문장을 못 들었다면, 등록은 하루 미뤄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