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장 의자에 앉아 본 부모가 알게 된 것
수능은 누구나 원서를 내고 볼 수 있는 시험이에요. 나이 제한이 없어서 해마다 시험장에는 학부모 나이의 수험생도 섞여 있어요. 그중에는 아이를 이해하고 싶어서 직접 시험장에 앉아 보는 부모도 있어요. 물론 모든 부모님께 수능을 보시라고 권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그런 선택을 한 부모들이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에는 귀 기울여 볼 만한 게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문제의 난이도가 아니라 시간에 관한 거예요. 아침 일찍 시험장에 들어가 해 질 무렵 나오기까지, 그 긴 하루를 몸으로 겪고 나서야 아이가 왜 그렇게 예민했는지 알겠더라는 거죠.
앉아 보면 보이는 것들
상상 속 장면 하나를 그려 볼게요. 고2 딸을 둔 어떤 엄마가 수능을 보고 왔다고 해 봐요. 그날 저녁 그 엄마가 딸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은 "국어가 이렇게 길 줄 몰랐어"였을 거예요. 지문 몇 개를 읽고 나니 시계가 반 넘게 지나 있었고, 점심을 먹고 들어간 시간엔 졸음이 쏟아졌고, 마지막 교시엔 머리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다고요.
그동안 딸이 "모의고사 보고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라고 할 때마다 엄마는 "하루 시험 본 걸로 뭘 그래"라고 했었죠. 그런데 직접 앉아 보고 나니 그 말을 다시는 못 하겠더라는 거예요. 이해라는 건 설명을 들어서가 아니라 겪어서 생긴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된 순간이에요.
꼭 수능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수능을 직접 보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아이의 자리에 앉아 보는 방법은 훨씬 작게도 할 수 있어요. 아이가 푼 모의고사 국어 시험지 하나를 받아서 시간을 재고 풀어 보는 것, 아이가 듣는 인터넷 강의 하나를 끝까지 들어 보는 것, 아이가 다니는 독서실 의자에 한 시간만 앉아 있어 보는 것. 어느 쪽이든 해 보면 생각보다 힘들다는 걸 알게 돼요.
아이가 공부하는 시간에 부모도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공부해 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자격증 책이든, 외국어든, 오래 미뤄 둔 책이든 괜찮아요. 한 시간 동안 같은 식탁에 앉아 각자 공부를 하다 보면, 집중이 얼마나 쉽게 흐트러지는지, 휴대폰이 얼마나 자주 손을 부르는지 부모도 몸으로 느끼게 돼요. 아이 입장에서는 혼자 버티는 게 아니라 누군가 함께 앉아 있다는 느낌이 생기고요. 부모가 먼저 "아, 집중 안 된다" 하고 웃으면 아이도 자기 힘든 점을 편하게 털어놓기 시작해요.
중요한 건 점수가 아니에요. 부모가 몇 점을 받았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와, 이거 진짜 어렵더라"라는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어떤 응원보다 크게 들립니다.
겪어 본 부모의 말은 달라져요
직접 앉아 본 부모들의 말투에는 공통된 변화가 있어요. "왜 이것밖에 못 했어"가 "그 시간에 이만큼 한 거면 대단하다"로 바뀌어요. "집중을 왜 못 해"가 "오후엔 원래 졸리더라"로 바뀌고요. 아이 입장에서는 같은 결과를 두고 전혀 다른 말을 듣게 되는 셈이에요. 그리고 이 변화는 아이에게 공감받는다는 느낌을 줘요. 그 느낌이 있어야 아이는 힘들 때 부모에게 먼저 말을 꺼냅니다.
이해한다는 말보다 먼저 할 일
많은 부모가 "엄마도 다 이해해"라고 말해요. 그런데 아이는 그 말을 잘 믿지 않아요. 부모가 겪어 보지 않았다는 걸 알거든요. 그래서 이해한다는 말을 하기 전에 한 번쯤은 아이의 하루를 직접 해 보는 게 좋아요. 그다음에 하는 말은 같은 말이라도 무게가 달라요.
이해는 아이를 봐주는 것과는 달라요. 아이의 힘듦을 알게 됐다고 해서 모든 걸 허락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겪어 본 부모는 무엇이 정말 힘든 것이고 무엇이 핑계인지도 더 잘 알아봐요. 그래서 아이 입장에서는 이해해 주는 부모의 말이 더 믿음직하게 들려요. "힘든 거 알아. 그래도 오늘 이건 하자"라는 말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건, 앞의 반쪽이 진짜라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이번 주말, 아이가 지난번에 본 모의고사 시험지 중 한 과목만 빌려 달라고 해 보세요. 시간을 재고 풀어 본 다음, 채점은 하지 말고 아이에게 "이거 어떻게 다 풀었어?" 하고 물어보세요. 그 질문 하나로 그날 저녁 식탁의 대화가 달라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