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이 길어질 때 부모가 살펴볼 세 가지
"사춘기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알고 보니 우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님들은 덜컥 겁이 나세요. 우리 아이의 짜증도 혹시 그런 건 아닐까 싶고요. 그런데 반대로 사춘기마다 나오는 짜증을 모두 우울로 의심하면 아이와 부모 모두 지쳐요. 그래서 둘을 가르는 기준이 필요해요.
딱 잘라 진단하는 건 전문가의 몫이에요. 다만 부모가 집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준은 있어요. 짜증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지, 생활의 얼마나 많은 부분에 퍼져 있는지, 그리고 아이에게서 무엇이 사라졌는지예요.
짜증에는 대개 이유와 끝이 있어요
사춘기 짜증은 대체로 무언가에 대한 반응이에요. 휴대폰을 그만하라는 말, 방 청소하라는 잔소리, 친구와의 다툼. 이유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풀려요. 화를 내고 문을 닫았던 아이가 저녁엔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웃고, 주말엔 친구를 만나러 신나게 나가요.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좋은 날도 분명히 섞여 있어요.
우울은 오래, 넓게 가라앉아 있어요
우울은 모양이 달라요. 특별한 이유 없이 가라앉은 기분이 몇 주씩 이어지고, 좋은 날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한 영역에 그치지 않고 생활 전체로 번져요. 공부뿐 아니라 친구, 취미, 식사, 잠까지 함께 흔들려요. 짜증이 하루 이틀 폭발했다 가라앉는 파도라면, 우울은 물이 서서히 차오르는 것에 가까워요.
청소년 우울은 어른처럼 슬픈 얼굴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도 알아 두시면 좋아요. 오히려 짜증과 화가 늘어나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래서 겉으로는 사춘기 짜증과 구분이 더 어렵습니다.
기간을 가늠할 때는 부모의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는 게 좋아요. 걱정이 시작되면 모든 날이 다 나빴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좋았던 하루 때문에 괜찮다고 넘기게 되기도 하거든요. 수첩이나 휴대폰 메모에 아이의 모습을 하루 한 줄씩 적어 보세요. "저녁 거의 안 먹음", "친구랑 통화하며 웃음" 같은 짧은 기록이면 충분해요. 두세 주만 모아도 좋은 날과 힘든 날이 어떤 비율로 섞여 있는지 보여요. 이 기록은 나중에 상담 선생님이나 전문가를 만날 때도 큰 도움이 됩니다.
무엇이 사라졌는지 살펴보세요
가장 눈여겨볼 신호는 사라진 것들이에요.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에도 손이 가지 않는다거나, 늘 만나던 친구와 연락을 끊는다거나, 웃는 얼굴을 언제 봤는지 기억이 안 난다면요. 짜증은 무언가를 원하는데 안 돼서 나오는 감정이지만, 우울은 원하는 것 자체가 줄어드는 상태예요. 좋아하던 것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다면 짜증 이상의 무언가일 수 있어요.
잠과 식사의 변화도 함께 보세요. 지나치게 많이 자거나 거의 못 자는 것, 식사량이 눈에 띄게 줄거나 늘어나는 것. 자주 피곤하다고 하고, 머리나 배가 아프다며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것도 신호가 될 수 있어요.
의심된다면 혼자 판단하지 마세요
이런 모습이 몇 주 넘게 이어진다면 집에서만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학교 상담 선생님, 지역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처럼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있어요. 아이에게 "병원 가자"라고 하면 거부할 수 있으니 "요즘 많이 힘들어 보여서, 이야기 들어 줄 사람을 같이 만나 보면 어떨까" 하고 권해 보세요. 혹시 아이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하거나 그런 생각을 내비친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전문가에게 연락하세요.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는 언제든 이용할 수 있어요.
구분보다 먼저 할 일
사실 짜증인지 우울인지를 정확히 가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아이가 힘들 때 부모에게 말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거예요. 짜증을 낼 때마다 "말버릇이 그게 뭐야"로 받아치면, 아이는 진짜 힘들 때도 말하지 않아요. 짜증 아래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해 주는 부모에게 아이는 결국 속을 보여 줍니다. 말투보다 마음을 먼저 봐 주는 부모가 가장 먼저 신호를 알아채요.
오늘 저녁에는 아이에게 "요즘 제일 재밌는 게 뭐야?" 하고 물어보세요. 대답이 바로 나온다면 안심해도 좋아요. 한참 생각해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침묵을 기억해 두셨다가 조금 더 가까이서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