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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 전략

성실, 적극, 우수만 줄줄이 적힌 세특의 운명

EDU HIGH 운영자 · 2026.02.03

"수업에 성실하게 참여하며 모둠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함. 과제 수행 능력이 우수하고 학업에 대한 열의가 높음." 이 두 문장을 읽고 어떤 학생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아무도 떠오르지 않을 거예요. 한 반 서른 명 누구에게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니까요.

대학이 이런 세특에 몇 점을 주는지 묻는다면, 솔직한 대답은 '점수를 줄 근거가 없다'에 가까워요. 감점을 받는 건 아니에요. 다만 평가하는 사람이 이 학생에 대해 새로 알게 된 게 하나도 없으니, 그 칸은 그냥 비어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읽혀요.

펼쳐 놓은 사전

형용사는 판단이고, 대학은 근거를 원해요

'성실하다', '적극적이다'는 선생님의 판단이에요. 판단은 중요하지만, 학생부를 읽는 사람은 그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보고 싶어 해요. 모든 학생부에 성실과 적극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근거 없는 판단은 서로 구별이 안 되거든요.

비교해 볼게요.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모둠 토의에서 의견이 갈리자 각자의 근거를 칠판에 나눠 적어 보자고 제안하고, 두 의견의 공통점을 찾아 발표 방향을 정리함". 두 번째 문장에는 '적극'이라는 단어가 없어요. 그런데 읽고 나면 이 학생이 적극적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죠. 형용사를 쓰지 않고 장면을 보여 준 거예요.

선생님들이 이런 문장을 쓰게 되는 사정

선생님들도 이걸 몰라서 그렇게 쓰는 건 아니에요. 한 선생님이 맡은 학생이 백 명을 훌쩍 넘는 경우도 흔하고, 학기 말에 그 모든 학생의 세특을 한꺼번에 써야 해요. 수업 중에 눈에 띄는 장면이 없었던 학생에게는 쓸 재료가 없으니, 무난한 표현으로 채워지기 쉬워요.

그러니 이 문제를 선생님 탓으로만 돌리면 해결이 안 돼요. 교사 입장에서는 수업 중에 학생 개개인의 장면을 짧게라도 메모해 두는 습관, 학생이 생각 과정을 남길 수 있는 활동지를 마련하는 일이 도움이 돼요. 학생 입장에서는 선생님 눈에 띌 만한 구체적인 장면을 수업 안에서 만드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고요.

같은 학생, 다른 기록

가상의 학생 지호를 예로 들어 볼게요. 지호는 조용한 편이라 발표를 자주 하진 않지만 과제는 늘 꼼꼼해요. 이런 학생은 흔히 "성실하고 책임감 있음"으로 끝나기 쉬워요.

그런데 지호가 영어 시간에 낸 요약 과제에서, 지문의 주장을 정리한 뒤 마지막에 "필자의 근거 중 두 번째는 표본이 작아서 약해 보인다"는 메모를 덧붙였다면 어떨까요. 선생님이 그 메모를 기억해 두었다가 세특에 옮기면, 지호는 '성실한 학생'에서 '글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읽는 학생'이 돼요. 같은 학생인데 기록이 전혀 다른 사람을 보여 주게 되죠.

여기서 중요한 건 지호가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과제에 메모 한 줄을 덧붙였을 뿐이에요. 하지만 그 한 줄이 선생님에게 쓸 거리를 줬어요. 조용한 학생일수록 말보다 글로 생각을 남기는 쪽이 편할 수 있어요. 발표를 잘하지 못해도 활동지 여백, 보고서 끝부분, 수업 후 짧은 질문 같은 통로로 충분히 자기 생각을 보여 줄 수 있어요. 성실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던 학생의 모습이 그렇게 조금씩 밖으로 나와요.

사전의 색인 페이지를 가까이서 찍은 모습

부모님이 집에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

부모님은 세특 작성에 직접 관여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돼요. 선생님께 문구를 부탁드리는 일도 피하셔야 해요. 대신 아이가 수업에서 장면을 만들 수 있도록 곁에서 거들 수는 있어요.

가장 쉬운 방법은 저녁에 "오늘 수업에서 이상하다고 느낀 거 있었어?"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없어"라는 답이 돌아오겠지만, 몇 번 반복되면 아이가 수업 중에 그런 순간을 의식하기 시작해요. 의식한 순간이 질문이 되고, 질문이 선생님 눈에 띄면 그게 세특의 재료가 돼요.

성실은 기본값이에요

학생부에서 성실과 적극은 칭찬이라기보다 기본값에 가까워요. 기본값만 채워진 기록은 감점은 없지만 가점도 없어요. 대학이 정말 궁금해하는 건 그 성실함이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나타났는지예요. 과제를 빠짐없이 냈다는 사실보다, 그 과제 안에서 무엇을 고민했는지가 더 궁금한 거죠. 같은 성실함이라도 장면으로 옮겨지면 비로소 평가할 수 있는 정보가 돼요.

이번 주에 아이와 함께, 혹은 교사라면 수업 노트를 펴고, 성실이나 적극이라는 단어 대신 쓸 수 있는 장면이 있었는지 하나만 찾아보세요. 하나가 보이면 그다음부터는 장면이 눈에 더 잘 들어오기 시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