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실험 설계를 맡긴 과학 세특을 대학은 어떻게 읽나
요즘 과학실에서 실험 계획서를 받아 보면 문장이 놀랄 만큼 매끈해요. 변인 통제도 빠짐없고, 준비물 목록도 깔끔하죠. 그런데 학생에게 "왜 온도를 25도로 맞췄어?" 하고 물으면 잠깐 말이 막혀요. 계획서의 절반쯤을 생성형 AI가 써 준 경우예요.
대학이 이런 세특을 어떻게 볼지 궁금해하는 분이 많은데, AI를 썼다는 사실 하나로 점수가 깎이거나 더해지지는 않을 거예요. 평가자가 보는 건 늘 같아요. 이 학생이 스스로 생각한 부분이 어디인가. AI가 설계를 대신 했다면 그 부분은 학생의 역량으로 읽히지 않고, AI의 답을 붙잡고 따져 묻고 고친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게 학생의 몫으로 읽힙니다.
AI가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을 나눠 보세요
생성형 AI는 일반적인 실험 순서를 빨리 정리해 주는 데 능해요. 대신 우리 학교 과학실에 어떤 기구가 있는지, 실험 시간이 몇 분인지, 지난번에 비슷한 실험에서 무엇이 틀렸는지는 몰라요. 가끔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시약 농도나 그럴듯하지만 틀린 원리를 자신 있게 내놓기도 하죠.
그러니 학생이 할 일은 분명해요. AI가 준 설계를 그대로 믿지 않고, 교과서와 우리 상황에 비춰 확인하고 바꾸는 것. 학교에 있는 전자저울의 정밀도가 낮아서 측정 단위를 바꿨다거나, 제안된 반응 시간이 수업 시간 안에 끝나지 않아 조건을 줄였다거나 하는 결정이 바로 학생의 판단이에요.
기록에 남으면 좋은 장면
예를 하나 들어 볼게요. 어떤 학생이 식물의 광합성 속도를 비교하는 실험을 AI에게 물었고, 빛의 세기를 거리로 조절하라는 답을 받았어요. 그런데 직접 해 보니 전등이 가까워질수록 물의 온도도 같이 올라갔어요. 학생은 빛과 열이 함께 변한다는 걸 알아채고, 수조를 하나 끼워 열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 다시 설계했죠.
이 과정이 세특에 남으면 읽는 사람은 AI라는 단어보다 학생이 통제되지 않은 변인을 스스로 찾아냈다는 데 주목해요. AI 사용은 출발점일 뿐이고, 기록의 주인공은 처음 설계의 허점을 잡아낸 학생이 됩니다.
반대 장면도 있어요. AI가 정리해 준 실험 절차를 그대로 따라 했고, 결과도 무난하게 나왔어요. 보고서도 깔끔해요. 그런데 고찰에는 "예상대로 결과가 나왔다"는 문장뿐이에요. 이 경우 선생님이 쓸 수 있는 문장은 많지 않아요. 성실하게 수행했다는 정도죠. 면접이 있는 전형이라면 더 곤란해질 수 있어요. 면접관이 "이 조건은 왜 이렇게 정했나요?" 하고 물었을 때, 자기가 정한 게 아니니 설명이 흔들리거든요. 학생부에 적힌 활동은 모두 질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안전해요.
숨기지도, 자랑하지도 않는 게 좋아요
AI를 쓴 걸 일부러 감출 필요는 없어요. 요즘 많은 학교가 수업에서 AI 활용을 허용하거나 안내하고 있고, 쓴 사실을 솔직하게 밝히고 출처를 정리하는 태도도 하나의 역량이에요. 반대로 "AI를 활용한 융합 탐구"처럼 도구 이름을 앞세우는 건 별 도움이 안 돼요. 몇 년 안에 누구나 쓰는 도구가 될 테니까요.
학교마다 AI 활용 수업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 있고, 학생부 기재 방식도 매년 나오는 기재요령을 따르게 돼요. 학생 입장에서는 담당 선생님이 안내하는 범위 안에서 쓰고, 어디까지가 AI의 도움이었는지 보고서에 스스로 표시해 두는 습관이 가장 안전해요.
교사 입장에서 물어볼 질문 하나
세특을 쓰시는 선생님께는 짧은 면담 질문 하나를 권하고 싶어요. "AI가 처음 준 설계에서 네가 바꾼 건 뭐였어?" 이 질문에 바로 답하는 학생이 있고, 한참 생각하는 학생이 있어요. 바로 답하는 학생의 대답은 그대로 세특의 중심 문장이 되고, 답을 못 하는 학생에게는 다음 실험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 주는 계기가 돼요. 계획서를 받을 때 AI에게 던진 질문과 받은 답을 함께 붙여 내게 하는 방법도 있어요. 학생이 어디까지 기대고 어디서부터 스스로 판단했는지가 한눈에 보여서, 세특을 쓸 때 막연한 칭찬 대신 구체적인 장면을 고를 수 있어요.
AI가 계획서를 써 주는 시대에 과학 세특이 보여 줘야 할 건 결국 의심하는 힘이에요. 오늘 AI에게 받은 답이 있다면, 그중 하나만 골라 "이게 정말 맞나?" 하고 교과서나 직접 실험으로 확인해 보세요. 그 확인이 곧 기록할 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