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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 전략

가상 정당을 만든 수업, 세특엔 무엇이 남을까요

EDU HIGH 운영자 · 2025.02.05

정치와 법 시간에 가상 정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하면 교실이 한동안 시끌벅적해져요. 당명을 정하고, 로고를 그리고, 그럴듯한 슬로건을 붙이죠. 발표 날엔 선거 유세 흉내까지 내는 조도 있어요. 수업 분위기로만 보면 학기 중 가장 활기찬 몇 주예요.

그런데 학기 말 세특을 쓰려고 그 결과물을 다시 펼쳐 보면 쓸 거리가 의외로 적어요. 로고가 예뻤다거나 발표가 재미있었다는 건 세특 문장이 되기 어렵거든요. 이 프로젝트에서 기록이 되는 건 공약 하나를 실제 제도 안에서 설계해 본 과정이에요. 재원은 어디서 오는지, 어느 법을 바꿔야 하는지, 누가 반대할지를 따져 본 흔적이요.

투표함에 표를 넣는 사람

공약은 바람이 아니라 설계예요

학생들이 만드는 공약은 대개 바람에 가까워요. 청소년 교통비 무료, 학교 주 4일제, 모든 동네에 도서관. 듣기엔 좋지만, 정치와 법 과목에서 배우는 건 바로 그 바람이 정책이 되기까지의 길이에요. 법률을 만들고 바꾸는 절차, 예산이 정해지는 과정,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누는 권한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공약 하나를 붙잡고 이 길을 따라가 본 학생의 기록은 확실히 달라요. 청소년 교통비 무료를 내건 조라면, 이게 국가가 할 일인지 지자체가 할 일인지부터 고민해야 해요. 교통 요금은 누가 정하는지, 이미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지역이 있는지 찾아보다 보면 공약의 모양이 바뀌어요. 바뀐 공약이 처음보다 덜 화려해도 괜찮아요. 오히려 그게 배운 흔적이에요.

반대편의 목소리를 들어 본 조

정당 프로젝트에서 가장 깊어지는 순간은 우리 공약에 반대할 사람을 상상해 볼 때예요. 어떤 정책이든 이득을 보는 쪽과 부담을 지는 쪽이 있으니까요. 학교 주 4일제를 공약으로 내건 조가 맞벌이 가정의 돌봄 공백이나 수업 시수 문제를 스스로 꺼내 들고 보완책을 고민했다면, 그 조는 정치를 이해관계의 조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거예요.

다른 조의 공약을 비판하는 토론 시간이 있다면 그것도 좋은 기회예요. 상대 공약의 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보다, 그 공약이 현행 법이나 제도와 어디서 부딪히는지 근거를 들어 말하는 쪽이 훨씬 정치와 법다운 질문이에요.

헌법과의 관계를 따져 보는 것도 깊이를 더하는 방법이에요. 정치와 법 과목에서는 기본권과 그 제한을 배우는데, 어떤 공약은 누군가의 권리를 넓히면서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좁히기도 해요. 예를 들어 학교 앞 상가의 영업시간을 제한하자는 공약은 학생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상인의 직업 활동의 자유와 부딪힐 수 있죠. 이런 충돌을 스스로 찾아내고 어느 선에서 균형을 잡을지 고민한 흔적은, 수업에서 배운 개념을 실제로 써 본 기록으로 읽혀요.

투표 용지가 놓인 흰 바닥

조 안에서 내가 맡은 질문 하나

이 프로젝트도 조별 활동이라 개인 기록이 흐려지기 쉬워요. 그러니 조 안에서 내가 끝까지 붙잡은 질문을 하나 정해 두면 좋아요. 예를 들어 우리 공약을 시행하려면 어떤 법을 고쳐야 하는지를 맡았다면, 실제 법령 정보 사이트에서 관련 조문을 찾아 읽어 보는 거예요. 법조문은 처음엔 어렵게 느껴지지만, 고등학생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쓰인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한 사람이 법률 쪽을, 다른 사람이 예산 쪽을, 또 다른 사람이 여론 쪽을 맡아 각자 조사한 내용을 보고서에 이름과 함께 남기면, 선생님은 조원마다 다른 문장을 쓸 수 있어요.

진로와 어떻게 이어질까요

정치외교, 행정, 법학 쪽을 꿈꾸는 학생이라면 이 프로젝트는 꽤 직접적인 재료가 돼요. 하지만 다른 진로를 가진 학생에게도 쓸모가 있어요. 환경공학을 꿈꾸는 학생이 탄소 배출 규제 공약을 맡아 법과 기술 사이의 거리를 고민해 봤다면, 그것도 충분히 자기 진로의 언어로 읽혀요. 다만 진로와 억지로 엮을 필요는 없어요. 정치와 법 과목에서 제도를 이해하는 힘을 보여 준 것만으로도 기록의 가치는 충분해요.

발표 자료를 만들기 전에

다음에 비슷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로고와 슬로건은 맨 마지막에 정하자고 조원들에게 제안해 보세요. 먼저 공약 하나를 골라 그게 현실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종이 한 장에 적어 보는 거예요. 필요한 법, 필요한 돈, 반대할 사람. 이 세 줄이 채워지면 발표는 저절로 단단해지고, 세특에 남길 문장도 그 종이 위에 이미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