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학생부 전략

이기고 지는 게 없는 윤리 토론, 세특엔 뭘 적죠?

EDU HIGH 운영자 · 2025.03.12

안락사는 허용되어야 할까요? 동물 실험은 정당할까요? 윤리 수업의 토론 주제에는 정답이 없어요. 그래서 학생들은 토론이 끝나고 나면 무엇을 남겨야 할지 막막해해요. 찬성 쪽이었는데 이겼다고 써야 할지, 내 주장을 요약해서 써야 할지.

윤리 세특에서 가장 힘 있는 기록은 내가 어느 편이었는지가 아니에요. 토론 중에 생각이 흔들렸던 순간, 상대의 반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남아야 해요. 대학이 이 과목 기록에서 보고 싶은 것도, 윤리 과목이 길러 주려는 것도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 사이에서 생각하는 힘이니까요.

책 페이지 위에 놓인 갈색 테 안경

입장만 남은 기록은 비어 보여요

"안락사 허용에 찬성하는 입장에서 자기결정권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주장함." 윤리 세특에서 흔히 보는 문장이에요. 그런데 이 문장에는 학생이 무엇을 생각했는지가 거의 없어요. 자기결정권은 찬성 쪽이라면 누구나 꺼내는 근거고, 논리적이라는 평가는 어떤 논리였는지 보여 주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토론에서 찬반은 대개 추첨이나 배정으로 정해져요. 학생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와 상관없이요. 그러니 어느 편이었는지는 학생에 대해 알려 주는 정보가 별로 없어요.

흔들린 순간이 가장 좋은 재료예요

진짜 윤리적 사고는 반론 앞에서 드러나요. 찬성 쪽으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상대가 "경제적 부담 때문에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받는 사람은 어떡하냐"고 물었을 때.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고 한참 생각했다면, 그 순간이 기록할 거리예요.

이후에 그 학생이 자기결정권이 진짜 자유로운 결정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다시 고민했다면, 생각이 한 층 깊어진 거예요. 입장은 여전히 찬성일 수 있어요. 하지만 처음의 찬성과 나중의 찬성은 무게가 달라요. 세특에 이 변화가 남으면, 읽는 사람은 이 학생이 다른 의견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요.

빨간 펜으로 책에 필기하는 손

사상가의 이름은 도구로만

윤리 과목에서는 많은 사상가를 배워요. 칸트, 밀, 롤스 같은 이름들이요. 세특에 이 이름들이 나오면 깊이가 있어 보일 거라 생각하는 학생이 많아요. 하지만 이름을 나열하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돼요.

중요한 건 그 사상을 실제 문제에 대 보는 거예요.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동물 실험을 보면 어떤 결론이 나오는지, 그 결론에서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 불편함은 어디서 오는지. 이렇게 사상을 도구 삼아 문제를 다뤄 본 기록은, 사상가 이름을 다섯 개 늘어놓은 기록보다 훨씬 설득력 있어요. 사상의 한계를 스스로 발견했다면 더 좋고요.

토론이 끝난 뒤 쓰는 한 장

윤리 토론이 끝나면 대부분 그날로 잊혀요. 그래서 토론 직후에 짧은 메모를 남기는 걸 권해요. 오늘 들은 반론 중 가장 대답하기 어려웠던 것, 그 반론 때문에 내 생각이 조금이라도 바뀐 부분,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질문. 세 줄이면 충분해요.

선생님이 성찰지를 받으신다면 이 세 줄을 거기에 쓰면 되고, 따로 받지 않으신다면 수업이 끝난 뒤 이 메모를 들고 가서 질문해 보세요. 수업 후에 찾아와 토론 이야기를 이어 가는 학생은 선생님 기억에 오래 남아요.

토론이 아닌 글쓰기 과제에서도 같은 원리가 통해요. 윤리 논술을 쓸 때 내 주장만 길게 펼치기보다, 가장 강한 반론을 직접 써 보고 그에 답하는 문단을 넣어 보세요. 반론을 약하게 만들어 놓고 쉽게 이기는 글은 금방 티가 나요. 상대의 가장 좋은 논리를 정직하게 세워 놓고 씨름한 글이 윤리 과목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예요. 이런 글쓰기 습관은 대학 면접에서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큰 힘이 돼요.

교사 입장에서 기록할 때

선생님들께도 작은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윤리 토론 세특을 쓸 때, 학생의 최종 입장보다 그 학생이 토론에서 던진 질문이나 받아들인 반론을 중심으로 써 보시는 거예요. 같은 편에 선 학생들의 기록이 서로 달라지고, 학생들도 토론에서 이기는 것보다 잘 듣는 것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걸 알게 돼요.

다음 윤리 시간에 토론이 있다면, 상대 편의 주장 중 가장 그럴듯한 것 하나를 미리 찾아 두세요. 내 주장을 준비하는 것만큼, 그 반론에 어떻게 답할지 고민하는 게 진짜 준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