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이 없는 과목에서는 세특이 학생을 가려내요
성적표에 A라는 글자 하나만 적혀 있는 과목을 떠올려 보세요. 같은 과목을 들은 학생의 대부분이 A를 받았다면, 그 A는 읽는 사람에게 거의 아무 정보도 주지 못해요. 이 학생이 그 과목에서 어떤 공부를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려면 다른 곳을 봐야 하죠. 그 다른 곳이 바로 세특이에요.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바뀐 학생부에는 이런 과목이 꽤 있어요. 체육·예술 교과와 과학탐구실험은 석차등급 없이 성취도만, 교양 교과는 이수 여부만 남아요. 사회·과학 교과의 융합 선택과목도 석차등급 없이 A부터 E까지의 성취도만 대학에 전달돼요. 이 과목들에서는 세특이 학생을 구별해 주는 거의 유일한 단서가 돼요.
등급이 없으면 세특을 더 오래 읽어요
석차등급이 있는 과목에서 대학은 등급과 세특을 함께 봐요. 등급이 학생의 상대적인 위치를 알려 주고, 세특이 그 안의 내용을 채워 주죠. 그런데 등급이 없는 과목에서는 이 균형이 바뀌어요. 성취도 A는 기준을 넘었다는 확인일 뿐이고, 같은 A 안의 차이는 세특만이 보여 줄 수 있어요.
그래서 이런 과목의 세특은 읽는 사람이 조금 더 주의 깊게 보게 돼요. 성적에서 얻을 정보가 없으니 문장에서 정보를 찾아야 하니까요. 융합 선택과목처럼 학생이 스스로 골라서 들은 과목이라면 더 그래요. 왜 이 과목을 골랐는지, 이 과목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그 학생의 관심사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가 돼요.
등급 부담이 없을 때 해 볼 수 있는 일
이런 과목에는 장점도 있어요. 등급 경쟁이 없으니 마음 편하게 도전해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상대평가 과목에서는 실수 하나가 등급을 바꿀 수 있어서 학생들이 안전한 선택을 하게 돼요. 반면 성취도만 나오는 과목에서는 좀 더 과감한 주제를 골라도, 결과가 기대만큼 안 나와도 성적에 큰 영향이 없어요.
과학탐구실험 시간을 예로 들어 볼게요. 상대평가가 아니니 정해진 실험을 무난하게 끝내는 것보다, 실험 조건을 하나 바꿔 보고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해 보는 모험을 할 수 있어요. 그 모험이 실패로 끝나도 괜찮아요. 오히려 실패 원인을 분석한 과정이 세특에 좋은 재료가 될 수 있어요.
시간 배분은 현실적으로
물론 이런 과목에 모든 에너지를 쏟을 수는 없어요. 석차등급이 나오는 과목의 내신 관리도 중요하니까요. 현실적인 방법은 이런 과목에서 한 학기에 하나의 활동만 깊게 해 보는 거예요. 수행평가 중 하나를 골라 거기에 조금 더 공을 들이는 정도로요.
융합 선택과목을 듣는다면 그 과목을 고른 이유를 잊지 않는 게 좋아요. 과목 선택 단계에서 품었던 궁금증이 있다면, 그 궁금증을 한 학기 동안 붙잡고 있다가 보고서나 발표 주제로 삼는 거예요. 선택한 이유와 수업에서 한 활동이 이어지면 세특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가 돼요. 과목 선택 상담 때 적어 냈던 선택 이유를 다시 꺼내 보는 것도 좋은 출발점이에요.
성취도의 의미도 가볍게 볼 건 아니에요. 등급이 없다고 해서 성취도가 아무래도 상관없는 건 아니거든요. 대부분이 A를 받는 과목에서 B나 C가 나오면 오히려 눈에 띌 수 있어요. 기본적인 성취도를 지키면서, 그 위에 세특으로 나만의 모습을 더하는 순서로 생각하면 돼요.
선생님의 눈에 띄는 가장 쉬운 길
성취도만 나오는 과목의 세특은 결국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본 장면으로 쓰여요. 그런데 이런 과목은 학생들도 상대적으로 힘을 덜 주기 때문에, 조금만 적극적으로 참여해도 쉽게 눈에 띄어요. 수업 중에 질문 하나, 발표 때 의견 하나가 다른 과목보다 더 크게 기억에 남을 수 있어요.
반대로 이 과목들을 쉬는 시간처럼 대하면, 세특에는 성실하게 참여함 정도만 남게 돼요. 그 문장도 나쁘지는 않지만, 학생에 대해 알려 주는 게 거의 없죠. 성적표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 과목에서 세특까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면, 그 과목은 학생부에서 빈칸이 돼요.
시간표를 다시 보는 오늘
고1, 고2라면 지금 내 시간표에서 등급이 나오지 않는 과목이 어떤 건지 표시해 보세요. 그리고 그중 하나를 골라, 이번 학기 그 과목에서 꼭 해 보고 싶은 활동 하나를 정해 보세요. 성적 부담 없이 진짜 궁금한 걸 따라가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