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급 받기 쉬운 과목이라고 덥석 골라도 될까요
"그 과목은 1등급이 많이 나온대." 고1 교실에서 이런 소문이 퍼지면 신청서가 한쪽으로 쏠려요. 그런데 숫자부터 확인해 볼게요. 5등급 상대평가에서 1등급은 어느 과목이든 상위 10%예요. 국어든 물리학이든 경제든 똑같아요. 제도상으로 어떤 과목만 1등급을 더 많이 주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그 소문은 어디서 나올까요. 대개 둘 중 하나예요. 수강생이 많아서 1등급을 받는 학생 수가 많아 보이거나, 시험이 쉬워 성취도 A가 쏟아져 '잘 받는 과목'처럼 느껴지거나요. 둘 다 내가 1등급을 받을 확률이 더 높다는 뜻은 아니에요.
1등급 학생 수와 1등급 확률은 달라요
수강생이 이백 명인 과목에서는 스무 명이 1등급을 받아요. 스무 명이 1등급이라고 하면 많아 보이죠. 열 명이 듣는 과목에서는 한 명뿐이고요. 그런데 내가 그 안에서 상위 10%에 들 확률은 두 과목이 같아요. 오히려 큰 과목은 경쟁자가 많아 변수도 많아요.
수강생이 많을수록 등급이 고르게 나뉘어 안정적이라는 장점은 있어요. 한두 명의 점수 차로 등급이 크게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1등급이 잘 나온다'는 말로 바뀌어 퍼지면 오해가 생겨요. 결국 어느 과목이든 열 명 중 아홉 명은 1등급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똑같아요.
시험이 쉬우면 오히려 실수 싸움이에요
시험이 쉽게 나오는 과목은 다들 높은 점수를 받아요. 그러면 1등급은 만점이나 거의 만점에 가까운 학생들 사이에서 갈려요. 한 문제 실수로 1등급에서 3등급까지 밀려나는 일도 생겨요. 쉬운 시험이 등급 받기 쉬운 시험은 아니라는 거죠.
반대로 어려운 시험은 점수가 넓게 퍼져서, 꾸준히 실력을 쌓은 학생이 앞서 나가기 좋아요. 어느 쪽이 자기에게 유리한지는 학생마다 달라요. 지난 시험지를 펴 놓고, 내가 주로 실수로 점수를 잃는지 아니면 어려운 문제에서 막히는지를 살펴보면 감이 와요. 실수가 적고 꼼꼼한 학생이라면 쉬운 시험이, 깊이 생각하는 걸 잘하는 학생이라면 어려운 시험이 맞을 수 있어요.
소문을 따라가면 잃는 것
소문만 보고 과목을 고르면 내 진로와 무관한 과목이 목록에 쌓이기 쉬워요. 대학은 학생부의 과목 목록을 보고 이 학생이 무엇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지 읽어요. 이유 없이 고른 과목이 많을수록 그 이야기가 흐려져요.
그리고 이번에 1등급이 많이 나왔던 과목이 다음 학기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어요. 선생님이 바뀌거나 수강생 구성이 달라지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또 하나, 같은 소문을 들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그 과목의 경쟁이 오히려 치열해질 수 있어요. 등급을 노리고 모인 학생들은 대개 성적 관리에 진심인 학생들이니까요. 쉬울 거라 생각하고 들어간 교실에서 생각보다 빡빡한 경쟁을 만나는 일, 생각보다 흔해요. 소문은 늘 한 학기 늦게 도착한다는 걸 기억해 두면 좋아요.
내게 유리한 과목은 따로 있어요
결국 나에게 1등급이 잘 나오는 과목은 내가 좋아하고, 그래서 오래 붙잡고 공부할 수 있는 과목이에요. 흥미가 있으면 수업에 집중하게 되고, 질문이 생기고, 시험 준비도 덜 괴로워요. 그 과목이 진로와도 이어진다면 세특도 풍성해지고요.
과목을 고를 때 "이 과목을 한 학기 동안 매일 공부해도 괜찮을까?"라고 스스로 물어보세요. 망설임 없이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그 과목이 나에게 1등급 확률이 높은 과목일 가능성이 커요. 반대로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면, 아무리 1등급이 많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도 한 학기를 버티기 힘들 거예요.
숫자 대신 이유로 고르세요
과목 선택에서 등급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등급은 과목을 고른 뒤 노력으로 만드는 것이지, 과목 이름에 붙어 오는 게 아니에요. 부모님께서도 "1등급 잘 나오는 과목"을 묻기보다 "네가 잘할 수 있는 과목"을 물어봐 주세요.
오늘 신청하려는 과목 목록을 펴 놓고, 소문 때문에 넣은 과목이 있다면 연필로 살짝 표시해 보세요. 그 과목 대신 넣고 싶은 과목이 떠오른다면, 그게 더 정직한 선택일 거예요. 정직하게 고른 과목은 한 학기 내내 나를 덜 지치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