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옛 글자 앞에서 손이 멈출 때, 현대어 풀이부터 읽어요
시험지를 넘기다 낯선 글자가 가득한 박스를 만나면 손이 멈춰요. 점 하나가 옆에 찍힌 글자, 세모처럼 생긴 자음, 지금은 쓰지 않는 받침들. 많은 고2 학생이 이 문제를 그냥 넘기고 마지막에 시간이 남으면 찍어요. "중세 국어는 외울 게 너무 많아서 포기했어요."
그런데 이 문제를 실제로 풀어 보면 외운 지식으로 푸는 부분은 생각보다 적어요. 대부분은 지문 안에 단서가 다 들어 있고, 그 단서를 지금 우리말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답이 나옵니다. 중세 국어 문제는 암기 시험이라기보다 다른 그림 찾기에 가까워요.
출제자는 현대어 풀이를 같이 줍니다
중세 국어 자료가 나올 때 보통 현대어 풀이가 함께 붙어 있어요. 시험을 보는 학생이 15세기 문장을 혼자 해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죠. 출제자가 묻고 싶은 건 해석 능력이 아니라 "지금과 무엇이 다른지 알아볼 수 있느냐"예요.
그래서 문제를 받으면 원문보다 현대어 풀이를 먼저 읽는 걸 권해요. 내용을 알고 나서 원문을 보면, 어느 단어가 어느 단어에 대응되는지 짝을 맞출 수 있어요. 짝을 맞추고 나면 차이가 보입니다. 지금은 '나무를'이라고 쓰는데 원문에는 '나모ᄅᆞᆯ'처럼 모양이 다르게 적혀 있다면, 그 차이가 바로 문제의 재료예요.
차이는 몇 가지 종류로 묶여요
비교하다 보면 차이가 몇 갈래로 나뉜다는 걸 알게 돼요. 첫째는 글자 자체가 지금 없는 경우예요. 아래아나 반치음, 여린히읗처럼 사라진 글자들이죠. 둘째는 소리를 적는 방식이 다른 경우예요. 중세 국어에서는 소리 나는 대로 이어 적는 일이 많았어요. 지금 '말씀이'라고 쓰는 걸 소리대로 붙여 쓰는 식이에요. 셋째는 문법 형태가 다른 경우예요. 주격 조사로 '가'가 아직 쓰이지 않고 '이'나 'ㅣ'가 쓰이거나, 지금은 없는 높임 표현이 보이거나 하는 것들이요.
이렇게 갈래를 나눠 두면 처음 보는 자료가 나와도 "이건 글자 차이, 이건 표기 차이, 이건 문법 차이" 하고 분류할 수 있어요. 보기 다섯 개도 대부분 이 갈래 중 하나를 묻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게요. 현대어 풀이에 '하늘이'라고 되어 있는데 원문에는 '하ᄂᆞᆯ히'처럼 적혀 있다고 해 볼게요. 비교해 보면 두 가지가 보여요. 하나는 아래아라는 글자가 쓰였다는 것, 다른 하나는 끝에 ㅎ 소리가 붙어 있다는 것이요. 지금은 사라진 이런 ㅎ을 가진 명사들이 중세 국어에 있었다는 사실은 기초 지식으로 알아 두면 좋지만, 몰라도 "현대어에는 없는 ㅎ이 원문에는 있다"는 차이는 눈으로 찾을 수 있어요. 보기가 그 차이를 맞게 설명했는지만 판단하면 되는 거죠.
그래도 알아 둬야 할 것은 있어요
비교가 먼저라는 말이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몇 가지 기초 지식은 있어야 비교가 가능해요. 사라진 글자 네댓 개의 이름과 대략의 소리, 이어 적기와 끊어 적기의 차이, 방점이 소리의 높낮이를 나타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만 이 기초는 양이 많지 않아요. 교과서의 중세 국어 단원 한 번, 개념서의 해당 부분 한 번이면 충분한 수준이에요.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이 기초에 더해 수많은 예외와 세부 규칙까지 외우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시험에 나오는 세부 규칙은 대개 지문의 설명 박스에 친절하게 적혀 있어요. 외우지 않아도 읽으면 되는 정보를 미리 외우느라 지치는 거죠.
기출을 풀 때는 이렇게 해 보세요
중세 국어 기출을 풀 때는 답을 맞히는 데서 멈추지 마세요. 문제를 다 푼 뒤 원문과 현대어 풀이를 나란히 놓고, 서로 다른 부분에 색연필로 표시해 보는 거예요. 한 문제에서 차이가 열 군데쯤 나올 수도 있어요. 그중 실제로 보기에서 물은 건 두세 개뿐이겠지만, 나머지도 언젠가 다른 문제에서 나올 재료예요.
이 작업을 기출 열 개쯤 반복하면 자주 등장하는 차이가 눈에 익어요. 같은 조사, 같은 어미, 같은 표기 방식이 계속 다시 나오거든요. 그때쯤이면 낯선 글자가 가득한 박스를 봐도 숨이 막히지 않아요. 아는 얼굴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까요.
현대어와 비교하는 눈은 중세 국어에만 쓰이는 게 아니에요. 지금 우리말에서 왜 '좋아'는 [조아]로 소리 나는지, 왜 어떤 단어는 소리와 표기가 다른지 같은 질문의 답이 옛말 속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중세 국어를 비교하며 읽다 보면 현대 문법도 함께 선명해지는 덤이 따라와요.
다음 문제는 풀이부터 읽어 보세요
다음에 중세 국어 자료를 만나면, 원문을 해석하려고 애쓰기 전에 현대어 풀이부터 읽어 보세요. 그리고 원문으로 돌아가 짝을 맞춰 보는 거예요. 그 순서 하나만 바꿔도 찍던 문제가 푸는 문제로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