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성적표의 A, 집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것들
"영어는 걱정 없어요. 계속 A 받아 왔거든요."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께 영어 공부를 여쭤보면 이런 대답이 자주 돌아와요. 성적표의 A 한 글자는 확실히 마음을 놓이게 하죠.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간 뒤 첫 모의고사에서 3등급, 4등급을 받아 오면 그제야 부모님도 아이도 당황하게 돼요.
중학교 성취평가의 A는 보통 90점 이상이면 받아요. 몇 명이 받든 상관없이 기준만 넘으면 되죠. 그래서 같은 A라도 91점 받은 아이와 100점 받은 아이가 똑같이 보이고, 교과서를 열심히 외워서 받은 A와 영어 글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서 받은 A도 구분되지 않아요.
성적표 뒤에 숨은 점수를 먼저 보세요
가장 먼저 해 보실 일은 A라는 글자 뒤에 있는 실제 점수를 확인하는 거예요. 학교 성적표나 나이스 학부모 서비스에서 원점수를 확인할 수 있어요. 학교 설정에 따라 보이는 항목이 다를 수 있으니 안 보이면 담임 선생님께 여쭤보세요. 90점대 초반이 계속 이어졌다면 어딘가에서 꾸준히 점수가 새고 있다는 뜻이에요. 서술형에서 깎였는지, 특정 유형에서 틀렸는지 아이와 함께 시험지를 보며 확인해 보세요.
점수가 늘 높았다면 다음은 그 점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볼 차례예요. 시험 기간에 본문을 통째로 외워서 받은 점수인지, 평소 실력으로 받은 점수인지에 따라 고등학교에서의 결과가 많이 달라지거든요.
처음 보는 글을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고등학교 영어, 특히 모의고사와 수능은 처음 보는 글을 읽는 능력을 물어요. 그래서 집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에게 교과서가 아닌 처음 보는 영어 글을 읽혀 보는 거예요. 고1 모의고사 지문 중 짧은 것 하나를 출력해서 읽게 하고, 무슨 내용인지 우리말로 설명해 달라고 해 보세요.
이때 아이가 내용을 대략이라도 설명할 수 있는지, 모르는 단어가 몇 개쯤 되는지, 긴 문장에서 막히는지를 지켜보시면 돼요. 부모님이 영어를 잘 모르셔도 괜찮아요. 해설지에 우리말 해석이 있으니 아이의 설명과 비교해 보시면 충분해요.
단어와 문법, 이렇게 가늠해 보세요
단어 실력은 고등학교 기초 단어장 한 페이지를 펴서 아이에게 아는 단어를 표시하게 해 보면 대략 알 수 있어요. 한 페이지에서 절반 이상 모른다면 고등학교 입학 전에 단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해요. 대부분 안다면 다음 단계 단어장으로 넘어가도 좋고요.
문법은 아이에게 교과서 본문에서 긴 문장 하나를 골라 주고, 어디까지가 주어이고 동사가 무엇인지 표시해 보게 하세요. 관계대명사나 분사가 들어간 문장이면 더 좋아요. 이걸 막힘없이 할 수 있다면 문법의 뼈대는 잡혀 있는 거예요. 헷갈려한다면 문법을 규칙으로만 외웠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런 점검은 한 번에 다 하실 필요 없어요. 오늘은 단어, 다음 주말엔 처음 보는 지문, 그다음엔 듣기 하는 식으로 나눠서 해 보세요. 아이도 시험처럼 느끼지 않고 편하게 응할 수 있어요. 점검 결과는 간단히 메모해 두셨다가 몇 달 뒤 같은 방식으로 다시 해 보시면,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도 함께 보실 수 있어요.
듣기와 속도도 함께 보세요
모의고사는 듣기 17문항으로 시작해요. 중학교 듣기평가보다 대화가 길고 속도도 빨라요. 고1 모의고사 듣기 파일을 하나 틀어 주고 아이가 몇 문제나 맞히는지 보시면 듣기 수준을 가늠할 수 있어요.
속도도 중요한 점검 항목이에요. 모의고사 독해 한 지문을 2분 안에 읽고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시간을 재 보세요. 내용은 이해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문장을 앞에서부터 덩어리로 끊어 읽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신호예요.
점검 결과로 아이를 다그치지 마세요
이렇게 점검하다 보면 생각보다 부족한 부분이 보일 수 있어요. 그럴 때 "A 받았다더니 이것도 못 해?"라는 말은 꼭 참아 주세요. 아이는 교과서를 열심히 공부해서 A를 받았고, 그건 분명 노력의 결과예요. 다만 고등학교가 요구하는 능력이 조금 다를 뿐이에요.
점검은 아이를 평가하려는 게 아니라 다음 공부의 방향을 찾으려는 거예요. 오늘 저녁 아이와 함께 고1 모의고사 지문 하나를 펴고, "이거 무슨 이야기인지 엄마 아빠한테 설명해 줄래?" 하고 가볍게 물어봐 주세요. 그 대화 하나로 많은 걸 알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