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는 학생들은 신청서 내기 전에 이걸 안 물었어요
고2 4월쯤 되면 상담실에 비슷한 얼굴로 들어오는 학생들이 있어요. "선생님, 저 과목 바꿀 수 있어요?" 친구 따라 고른 과목이 생각보다 어렵거나, 진로가 바뀌었는데 이미 다른 과목을 듣고 있거나, 반 분위기가 맞지 않아서요. 안타깝게도 학기가 시작된 뒤에는 바꾸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과목 선택에서 후회하는 학생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고를 때 확인했어야 할 것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신청서를 내기 전에 스스로 던져 볼 질문들을 차례로 정리해 볼게요.
이 과목을 고른 이유를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나요
가장 먼저 물어볼 질문이에요. "물리를 고른 이유가 뭐야?"라고 했을 때 "공대 가려면 필요하다고 해서요"라는 대답과 "역학 단원이 재미있었고 기계공학과에서 기초 과목이라서요"라는 대답은 무게가 달라요. 앞의 대답은 남의 말이고, 뒤의 대답은 내 판단이에요.
이유를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없다면 아직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거예요. 그렇다고 그 과목이 틀린 선택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면 공부가 힘들어지는 순간 쉽게 흔들려요. 내가 고른 이유가 분명할수록 그 과목을 끝까지 붙잡을 힘이 생겨요.
친구 따라 고른 건 아닌가요
친한 친구와 같은 수업을 듣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워요. 하지만 고2 선택과목은 친구 관계보다 오래 남는 결정이에요. 내신 성적표에 남고, 학생부에 남고, 대학이 그 기록을 봐요.
친구 따라 고른 과목이 마침 나에게도 잘 맞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두 배로 힘들어요.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와 성적을 비교하게 되고, 친구는 잘하는데 나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과목 자체가 싫어지기도 해요. 친구의 선택은 참고만 하고, 결정은 내 기준으로 하세요. 같은 이유로 "그 과목 선생님이 좋다더라"는 말도 조심하세요. 선생님은 바뀔 수 있지만 과목 이수 기록은 남아요.
학교에서 실제로 열리는 과목인지 확인했나요
학교마다 개설되는 과목이 달라요. 신청 인원이 너무 적으면 그 과목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고, 시간표 사정으로 원하는 과목 둘을 동시에 듣지 못할 수도 있어요. 공동교육과정이나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으로 보완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학교마다 운영 방식이 달라요.
신청서를 내기 전에 담임 선생님이나 교육과정 담당 선생님께 개설 가능성과 시간표 조합을 꼭 여쭤보세요. 이 확인을 건너뛰었다가 나중에 원하지 않는 과목으로 배정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해요.
그 과목을 듣는 학생 수를 생각해 봤나요
5등급제에서 1등급은 그 과목을 들은 학생의 상위 10%예요. 그래서 수강 인원이 적은 과목은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적어요. 인원이 많으면 자리가 늘어나지만, 그만큼 경쟁자도 많아지죠.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단순하게 말하기 어려워요.
다만 등급 계산만 보고 과목을 고르는 건 위험해요. 수강 인원이 적다는 이유로 진로와 무관한 과목을 고르면, 성적은 지켰을지 몰라도 학생부에서 전공 적합성을 보여 주기가 어려워져요. 대학은 성적과 함께 어떤 과목을 들었는지도 봐요.
고3 과목까지 이어서 그려 봤나요
고2 과목은 고3 과목으로 이어져요. 고2에서 어떤 과목을 들었느냐에 따라 고3에서 들을 수 있는 심화 과목이 달라지기도 해요. 그래서 고2 신청서만 보지 말고, 고3까지 2년 치 과목표를 한 장에 그려 보는 게 좋아요.
이렇게 그려 보면 빈 곳이 보여요. 공학 계열을 생각하는데 고3까지 물리 관련 과목이 하나도 없다든지, 의약학 계열을 생각하는데 생명과학 심화가 빠져 있다든지요. 이런 빈 곳은 신청서를 내기 전에 발견해야 고칠 수 있어요. 학교에서 나눠 준 교육과정 편성표를 펴 놓고, 듣고 싶은 과목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쳐 가며 그려 보면 삼십 분이면 충분해요. 그 그림을 들고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하면 상담도 훨씬 구체적으로 흘러가요.
신청서는 연필로 먼저 써 보세요
신청서를 바로 내지 말고 연필로 먼저 써서 사흘쯤 책상 앞에 붙여 두세요. 매일 아침 그 종이를 보면서 "이 과목, 2년 동안 정말 괜찮을까?"를 한 번씩 물어보는 거예요. 사흘 동안 한 번도 마음이 걸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내면 되고, 계속 걸리는 과목이 있다면 그게 다시 생각해 볼 과목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