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 앞부분만 까만 문제집이 쌓이는 이유
아이 책장을 한번 정리해 보신 적 있나요. 앞의 스무 쪽만 연필 자국이 빽빽하고 나머지는 새것처럼 하얀 문제집이 두세 권씩 나오는 집이 정말 많아요. 그걸 본 부모님 입에서는 대개 "넌 왜 끝까지 하는 게 없니"라는 말이 나오고요.
그런데 중2 아이들 책장을 같이 들여다보면, 끈기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게 있어요. 버려진 문제집들이 대부분 그 아이에게 처음부터 맞지 않는 책이었다는 거예요. 고를 때 기준이 어긋나 있었으니, 끝까지 가기가 애초에 어려웠던 거죠.
친구가 푸는 책, 서점 1위 책의 함정
문제집을 고르는 가장 흔한 이유는 "반에서 잘하는 애가 이거 풀더라"예요. 서점 매대 맨 앞에 놓인 책, 학원에서 추천한 책도 자주 선택되고요. 문제는 그 책이 잘하는 친구의 지금 수준에 맞춰진 책이라는 점이에요. 내 수준과 차이가 크면 첫 단원부터 막히는 문제가 줄줄이 나오고, 그러다 보면 문제집을 펴는 것 자체가 싫어져요.
반대 경우도 있어요. 너무 쉬운 책을 고르면 처음 며칠은 술술 풀려서 신이 나는데, 금방 지루해져요. 다 아는 걸 반복하는 느낌이 들면 손이 안 가요. 결국 두 경우 모두 첫 장 근처에서 멈추게 돼요.
표지 디자인이나 광고 문구에 끌려 고르는 경우도 있어요. "한 권으로 끝내는", "최상위" 같은 말이 크게 적힌 책은 왠지 믿음직해 보이죠. 하지만 그 말은 책이 어떤 학생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알려 주지 않아요. 결국 중요한 건 책이 아니라, 그 책을 펴는 우리 아이의 지금 실력이에요.
서점에서 딱 한 단원만 풀어 보세요
그래서 권하는 방법은 사기 전에 직접 풀어 보는 거예요.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문제집을 두세 권 골라, 지금 배우고 있는 단원을 펴고 문제 열 개 정도를 눈으로 풀어 보세요. 바로 풀리는 게 일곱 개 안팎, 조금 고민하면 풀리는 게 두세 개, 손도 못 대는 게 한 개 정도라면 지금 나에게 딱 맞는 책이에요.
열 개 중 절반 이상을 손도 못 댄다면 그 책은 지금 말고 나중에 만나면 돼요. 반대로 열 개 다 바로 풀린다면 한 단계 위 책을 찾아보는 게 좋고요. 온라인으로 살 때도 미리보기를 활용하면 비슷하게 확인할 수 있어요.
해설지를 먼저 펼쳐 보는 습관
문제집의 진짜 실력은 해설지에서 드러나요. 혼자 공부하는 중학생에게 해설은 선생님 역할을 해 주거든요. 틀린 문제의 해설을 읽었는데도 이해가 안 되면, 아이는 그 문제를 그냥 건너뛰게 되고 건너뛴 문제가 쌓이면 책을 덮게 돼요.
서점에서 문제를 풀어 볼 때, 하나쯤은 해설을 찾아 읽어 보세요. 풀이 과정이 중간 단계 없이 답만 툭 나와 있는지, 왜 그렇게 푸는지 설명이 붙어 있는지. 내가 읽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해설이라면, 그 책은 혼자서도 끝까지 갈 가능성이 높아요.
두께도 기준이 돼요
의욕이 넘칠 때는 두껍고 문제가 많은 책이 든든해 보여요. 그런데 끝까지 가 본 경험이 별로 없는 아이에게 두꺼운 책은 산처럼 느껴져요. 매일 풀어도 줄어드는 게 안 보이니까요. 특히 중2는 학교 진도와 수행평가, 시험 준비가 겹치는 학년이라 계획한 만큼 시간이 나지 않는 날이 많아요.
처음에는 한 학기 안에 끝낼 수 있는 얇은 책을 고르는 걸 추천해요. 한 권을 끝까지 풀어 본 경험은 생각보다 큰 자신감을 줘요. 그 자신감이 생긴 다음에 조금 더 두꺼운 책으로 넘어가도 늦지 않아요.
이미 사 둔 문제집은 어떻게 할까요
책장에 반쯤 버려진 문제집이 있다면 아깝다고 억지로 다시 붙잡게 하지는 마세요. 아이에게 맞지 않았던 책을 의무감으로 다시 펴면 그 과목 자체가 더 싫어질 수 있어요. 너무 어려웠던 책은 잘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실력이 올라왔을 때 꺼내면 오히려 좋은 심화 교재가 돼요.
대신 그 책이 왜 맞지 않았는지는 아이와 함께 이야기해 보세요. 너무 어려웠는지, 해설이 불친절했는지, 너무 두꺼웠는지. 그 대답이 다음 문제집을 고르는 가장 정확한 기준이 돼요. 버린 문제집도 그렇게 쓰면 헛돈이 아니에요.
이번 주말에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 보세요. 그리고 아무것도 사기 전에, 지금 배우는 단원 문제 열 개를 같이 눈으로 풀어 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