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던 고3의 저녁 20분
고3 9월쯤 되면 교실 풍경이 달라져요. 오후 수업 시간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학생이 늘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엎드린 학생이 하나둘 보여요. 공부할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에요. 몸이 버티지 못하는 거예요. 봄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시기거든요.
그런데 이런 학생들에게 "저녁 먹고 20분만 걸어 봐"라고 하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해요.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해 본 학생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해요. 20분을 걷고 왔더니 오히려 밤 공부가 더 잘 됐다고요.
오래 앉아 있다고 오래 공부하는 건 아니에요
고3은 하루 대부분을 앉아서 보내요. 학교 수업, 자습, 학원, 집에서의 공부까지요.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지만, 실제로 집중한 시간은 그렇지 않을 수 있어요. 저녁 무렵이 되면 머리가 멍해지고, 같은 문장을 몇 번씩 읽게 되는 경험, 다들 있을 거예요.
이건 머리가 지쳤다는 신호예요. 그리고 지친 머리로 앉아 있는 두 시간보다, 잠깐 쉬고 돌아온 맑은 머리로 하는 한 시간 반이 더 많은 걸 남겨요. 문제는 많은 고3이 쉬는 방법으로 휴대폰을 집어 든다는 거예요. 눈과 머리가 계속 화면을 보니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죠.
걷는 동안 몸과 머리가 함께 쉬어요
산책이 좋은 이유는 몸을 움직이면서도 머리를 쉬게 해 주기 때문이에요. 가볍게 걸으면 온종일 굳어 있던 몸이 풀리고, 기분도 한결 가벼워져요. 그리고 화면 대신 바깥 풍경을 보니 눈도 쉬어요.
걷는 동안 머리는 오늘 공부한 내용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기도 해요. 산책하다가 낮에 안 풀리던 문제의 실마리가 떠올랐다는 학생도 있어요. 억지로 생각하지 않아도, 머리가 한 걸음 물러서서 정리할 틈이 생기는 거예요.
저녁 20분이 밤잠을 바꿔요
산책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은 잠이에요. 고3이 되면 몸은 피곤한데 막상 누우면 잠이 잘 안 오는 경우가 많아요. 하루 종일 앉아 있다 보니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머리는 계속 긴장해 있거든요.
저녁에 가볍게 몸을 움직이면 밤에 잠드는 게 한결 수월해져요. 다만 자기 직전에 하는 격한 운동은 오히려 몸을 깨우니, 저녁 식사 후 시간에 가볍게 걷는 정도가 딱 좋아요. 잠을 잘 자면 다음 날 오전이 맑아지고, 그만큼 공부 효율도 올라가요. 20분을 투자해서 다음 날 몇 시간을 얻는 셈이에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할 수 있어요
야간 자율학습이 있는 학교라면 저녁 식사 후 남는 시간에 운동장을 몇 바퀴 걸어 보세요. 친구와 함께 걸어도 좋아요. 다만 공부 이야기, 성적 이야기는 잠시 내려놓고요. 그 시간만큼은 머리를 비우는 데 쓰는 거예요.
집에서 공부한다면 저녁을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도 좋아요. 부모님과 함께 걸으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시간도 생겨요. 얼굴을 마주 보고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나란히 걸으면 한결 편하게 꺼낼 수 있어요.
비가 오거나 날이 너무 추운 날은 집 안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것으로 대신해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하루 한 번, 책상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만드는 거예요. 계단을 몇 층 오르내리거나, 창문을 열고 제자리에서 팔다리를 크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굳은 몸이 꽤 풀려요.
습관이 되려면 시간을 정해 두세요
산책은 시간 날 때 해야지 하면 절대 안 하게 돼요. 고3에게 시간이 남는 날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하루 중 산책 시간을 정해 두세요. 저녁 먹고 바로, 이런 식으로요. 정해진 시간에 하면 고민할 필요 없이 몸이 먼저 움직여요.
처음 며칠은 20분이 아깝게 느껴질 거예요.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 밤 공부 집중력이 달라진 걸 느끼면, 그 20분이 아까운 게 아니라 공부를 위한 투자라는 걸 알게 돼요. 걷는 동안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어 두세요. 걸으면서 영상을 보면 눈과 머리는 결국 쉬지 못해요. 음악 정도는 괜찮지만, 가끔은 그냥 바람 소리를 들으며 걸어 보는 것도 좋아요.
오늘 저녁밥을 먹고 나면 운동화를 신고 딱 20분만 걸어 보세요. 그리고 돌아와서 펴는 첫 페이지가 평소와 어떻게 다른지 느껴 보세요.